“콘서트홀 소리가 궁금하실 것 같은데 말씀 드리기 전에 음악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17일 부산콘서트홀. 오는 6월 개관을 앞두고 열린 사전 공개 행사에서 예술 감독을 맡은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 정명훈(72)은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 앞에 앉았다. 잠시 후 브람스의 ‘3개의 간주곡’ 가운데 1번이 그의 손에서 흘러나왔다. 정명훈은 197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 입상하며 피아니스트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당초 예정에 없었던 ‘깜짝 연주’ 덕분에 공연장 음향까지 음미할 기회가 됐다.
부산시민공원에 들어서는 부산콘서트홀은 여러모로 의미가 적지 않다. 우선 부산의 첫 클래식 전용 공연장이다. 수도권 이외의 공연장에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된 것도 처음이다. 오는 6월 개관 페스티벌에서는 정 감독이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로서 무대에 서는 것은 물론, 피아니스트 조성진·선우예권의 공연도 잡혀 있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서는 지역 공연장의 고민도 엿볼 수 있었다. 우선 9일간의 화려한 개관 축제에서 정 감독이 주도하는 아시아 필하모닉(APO)이나 야외 공연 등을 맡는 클래식부산오케스트라는 있었지만 정작 부산시향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부산 공연장의 문을 여는 자리에 60여 년 역사의 부산 악단이 빠진 셈이었다.
물론 개관 이전의 시범 공연이나 하반기 부산시향 연주회가 있지만, 뒷맛이 그리 개운하지만은 않았다. 지역 문화 행정의 ‘교통 정리’가 쉽지 않다는 방증(傍證)이기 때문이다. 현재 부산시향은 부산시립예술단 소속이지만 재단법인 부산문화회관에서 위탁 운영을 맡고 있다. 오는 6월 개관하는 부산콘서트홀은 별도의 조직인 ‘클래식부산’이 운영하게 된다. 하드웨어인 공연장과 소프트웨어인 예술 단체의 행정을 통합 관리해도 모자랄 판에 이중 삼중으로 쪼개진 셈이다.
지역 문화 행정의 난맥상은 전국 지자체들의 공통된 고민거리다. 공연장과 단체들의 운영 비용은 대부분 지역 주민들이 낸 혈세에서 충당된다. 당연히 중복 과잉 투자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2027년에는 부산오페라하우스 건립도 앞두고 있다. 국내 최고로 꼽히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도 지난해 오페라·발레 공연 횟수가 81회에 머물렀다. 지난 시즌 270여 회에 이르렀던 빈 국립오페라극장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오페라·발레의 ‘공급 부족’으로 관객의 ‘수요 창출’을 기대하기 힘든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거기에 지역 오페라하우스는 신규 시장 개척과 재원(財源) 마련이라는 이중 과제까지 짊어져야 한다. 공연장 개관은 지역 문화 행정이라는 ‘고차 방정식’의 모범 답안보다는 문제 풀이의 시작에 가깝다. 이날 박형준 부산광역시장은 “글로벌 문화 도시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표했다. 그 기대가 현실이 되려면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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