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원작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 줘’가 인기 상승세다. 내 남편과 결혼해 달라는 이 제목부터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드라마의 정체가 무엇일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1화 재생 버튼을 눌러버렸다.
드라마는 내내 고생만 하다 결국 병을 얻어 시한부가 된 주인공 지원이, 남편과 절친 수민의 불륜을 목격하고 거기에 더해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난 삶에서 수민은 학창 시절부터 친구들과 지원을 이간질하거나, 첫사랑과 이어지지 못하게 방해하는 등 갖은 괴롭힘을 저질렀고, 결국 지원의 남편과 불륜을 벌이기에 이른다. 그 남편은 또 어떤가. 지원이 암 선고를 받은 날 모친에게 “쟤 없으면 누가 나 밥해 줘”라는 대사를 날리는가 하면, 지원이 죽으면 몰래 들어놓은 생명보험 10억원을 수령할 생각에 설레는 인간 말종이다. 지원은 이 모든 기억을 안고 10년 전, 그러니까 결혼 전으로 회귀한다.
10년 전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달라지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또다시 수백 번쯤 본 설정이 하나 나오는데, 모두에게 관심 밖이던 주인공이 안경만 벗으면 주위 이목을 끄는 절세 미녀가 된다는 것이다. 안경이 도대체 작가들에게 어떤 요물이길래 매번 이런 마법 같은 효과를 내는 걸까. 위기를 달라진 외모로 해결하려 드는 방식은 정말이지 구식이다. 이런 설정은 주인공이 10년 후의 미래를 알아서 복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외모가 바뀌어서 인생도 바꿀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여지를 준다. 그렇게 환골탈태한 지원은 지금은 부장이지만 10년 뒤에는 회장 손자임이 밝혀져 기업 총수가 되는 또 다른 남자 주인공의 도움을 받아 복수에 성공한다.
보면 볼수록 어디서 많이 본 내용 같다. 앞에서는 착한 척하지만 뒤에서는 호박씨를 까는 오래된 절친, 지독할 만큼 며느리를 괴롭히고 아들만 감싸고 도는 안하무인 시어머니. 마치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나 본 듯한 전형적 설정. 덕분에 정해진 듯 뻔한 악행을 하는 캐릭터들은 극 안에서 입체적으로 뛰놀지 못하고 시청자들이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주인공의 복수를 위한 도구로 납작하게 존재한다.
도대체 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드라마 후반부에는 지원이 끈질기게 자기를 괴롭힌 시어머니에게 ‘아줌마’라는 멸칭을 쓰며 복수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 장면이 이 드라마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 장면을 ‘참교육’이라 불렀다.
그 ‘참교육’의 서사를 쌓기 위해 드라마는 온갖 자극적 요소를 집어넣는다. 남자 캐릭터의 입에서 “이래서 기집애들은 3일에 한 번씩 밟아줘야 한다니까”와 같은 무식하고 폭력적인 대사와 물리적인 폭력까지 계속해서 지원에게 가하는데, 웃기는 것은 그를 구원하는 것 또한 다른 남자 캐릭터였다. 남자 때문에 위기를 겪고 남자 덕분에 구원받는 방식은 너무나 일차원적이다. 어떤 교훈도 느낄 수 없다.
사람들이 더 이상 영화나 드라마에서 얻고자 하는 메시지가 크게 없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고작 대사 한 줄에 불과할지라도,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인생의 의미를 관통하고자 하는 의지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 나는 드라마의 존재 가치는 그로 증명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구식이라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OTT 시대로 접어들며 점점 자극적인 요소에 무감각해져 간다. 폭력에는 이유가 없지만, 적어도 드라마에 등장하는 폭력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메시지 없는 폭력은 모방 범죄만 만들 뿐이다. 무의미하게 ‘사이다’만을 위한 폭력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