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60만을 목전에 둔 '충TV' 제작자 김선태 충주시청 주무관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패러디해 충주공설시장을 홍보하는 모습. 윤석열 대통령은 "정책 홍보는 충주시청 김선태 주무관처럼 쉽고 재미있게 하라"고 극찬한 바 있다. /충TV 화면 캡처

‘충주맨’ 김선태를 만난 건 작년 봄. 그가 만든 충주시 유튜브 ‘충TV’가 구독자 30만을 돌파했을 때다. 반기문·원희룡 같은 명사들이 앞다퉈 출연한다는 “그놈의 인기”에 비하면 충주시청 분위기는 썰렁했다. 김선태 주무관이 어디 있느냐 묻자 직원들은 저쪽이라며 턱짓만 했다. 그가 1인 5역 하며 일하는 곳은 먼지 풀풀 날리는 창고. 6급으로 초고속 승진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혁신의 사례”로 극찬한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김선태는 충주시청에서만큼은 스타가 아니었다.

적대적 환경에서도 충TV가 충주 인구 세 배인 60만 구독자를 목전에 둔 비결은 김선태 개인의 역량과 맷집에 있었다. ‘재미없으면 안 본다’고 확신한 그는 ‘B급 저퀄리티 감성’으로 무장, 도지사·시장 자랑질로 도배된 기존 지자체 홍보의 틀을 완전히 깼다. 코로나에 거리 두기 안 하면 관(棺)으로 직행한다고 경고한 ‘관짝춤’이 대표적. 1000만 조회수가 코앞이다.

단지 재미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핫이슈에 충주 홍보를 절묘하게 얹어가는 재치가 일품이다. 삼성 이재용 회장의 ‘쉿!’ 영상을 패러디해 단 12초만에 충주 공설시장을 홍보한 거며, 팬더곰 푸바오로 분장해 충주산 대학찰옥수수를 생으로 뜯어먹고, 백종원을 흉내내 충주시 축제를 암행 감찰한 영상은 MZ세대의 배꼽을 쥐게 했다.

실제로 충TV 구독자의 80%가 10~30대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충주맨을 중심으로 ‘지방정부 PR과 도시 브랜드 구축 효과’를 연구한 정주용 국립교통대 행정정보학과 교수는 “충TV 주구독층인 10~30대는 대한민국 정부가 뭘 하는지 몰라도 충주시가 뭘 하는지는 안다”고 했다. “충주에 대한 인식이 우호적으로 바뀌고, 충주가 어디 있는지 몰랐던 사람들이 충주를 검색하고, 인지하고, 찾아온다”고도 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2024년도 수능에 충주의 위치를 묻는 지리 문제가 출제됐다. 충TV 상징인 충주시 로고와 함께.

급기야 용산 대통령실까지 충주맨 신드롬이 덮친 모양이다. “정부와 국민 사이에 원자탄에도 안 깨질 콘크리트 벽이 있다”고 질타한 대통령이 “충TV처럼 쉽고 재미있게 정부 정책을 홍보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제는 ‘쉽고 재미있게’ 국민과 소통하기가 그리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충TV로 뜬 김선태가 전국 지자체에 불려다니며 노하우를 전수하지만 제2, 제3의 충주맨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불편한 진실의 한가운데 리더십이 있다. 충주맨 김선태를 키운 결정적 ‘배후’는 7급 주무관에게 전권을 주고 판을 깔아준 조길형 충주 시장이다. 그는 산척면 노인들에게 지팡이로 맞아가며 고구마 캐는 일을 거들던 말단 공무원의 ‘똘끼’를 알아봤다. 팀장·과장 등 직속 상관들은 이게 무슨 홍보 영상이냐며 패대기를 쳤지만 시장이 방패막이가 됐다. ‘라이트 월드’ 등 자신의 실패한 정책을 ‘디스’ 해도 괘념치 않았다. 경부선에서 제외돼 변방으로 밀려난 충주를 알릴 수 있다면 기꺼이 ‘밥’이 되겠다는 의지였다. 김선태 역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무결재로 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게 해준 시장님이 아니었다면 충TV는 없었다”고 했다.

어쩌면 고립무원의 윤 대통령과 용산 대통령실에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조길형과 충주맨의 유쾌한 브로맨스인지도 모른다. 원자탄에도 끄떡 않는 콘크리트 철벽이 당장 대통령과 국민 사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엑스포 유치 실패부터 영부인 명품백 이슈까지 최근 대통령실이 일관되게 보여준 불통과 오판은 듣고 싶은 얘기만 듣는 지도자, 주군의 심기만 살피는 참모들이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아 빚어낸 결과다.

소통의 고수인 충주맨은 이 철벽을 깨뜨릴 비책을 알고 있을까. 전화해 물어보니, 역시 파격이다. 자신이 대통령실 참모라면 ‘윤 대통령과 짜장면 먹기(’윤짜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멸칭이다)’ ‘대통령 집무실 발로 차고 들어가기’ 같은 영상부터 찍겠단다. 대통령의 ‘엄근진(엄격·근엄·진지)’ 이미지부터 확 바꾸겠다는 얘기다.

유머는 때로 원자탄보다 강하다. 충주맨의 이 무례한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대통령실엔 아직 희망이 있다. 가장 취약한 2030 지지도 끌어낼 수 있다. 충TV가 그랬듯, 지금까지 해온 것과 정반대로 하면 된다. 혹시 아는가. ‘공무원 생태계를 교란했다’는 이 엉뚱하고도 영리한 지방 공무원이 김건희 해법을 제시할지.

모든 권력은 뜨고 진다. ‘궁정 쿠데타’ 운운하는 이들이 가장 위험하다. 비틀거린다고 추락하는 것도 아니다. 윤석열의 때는 아직 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