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최근 박인비가 첫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미 LPGA 투어에 아이 키우는 선수가 또 누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온라인 미디어센터에 ‘투어의 엄마들’을 소개하는 자료가 있었다. 올 시즌 LPGA 투어에는 아이 키우면서 대회에 나서거나 휴직 중인 골프 선수가 모두 26명이다. 박희영, 허미정, 스테이시 루이스, 폴라 크리머 등 친근한 이름이 여럿이다.

선수들 이름과 함께 ‘스머커스 LPGA 아동 발달 센터’가 소개되어 있었다. LPGA가 기업(스머커스) 후원을 받아 30년 전부터 선수·직원 자녀를 대상으로 무료로 운영해온 이동식 직장 어린이집이다. 아이 키우는 골프 선수들도 다른 워킹맘과 마찬가지로 늘 시간에 쫓기고 수면 부족에 시달리기 일쑤다. 게다가 대회 출전을 위해 매주 미국 전역은 물론 해외까지 돌아다닌다. 일주일에 5~6일을 대회장에 머물러야 하니 아이를 전적으로 남에게 맡기기도, 아이와 줄곧 떨어져 지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 꼭 맞는 이동식 돌봄 서비스가 프로 스포츠 최초로 마련됐고, 해마다 이용자가 들쑥날쑥해도 지속적으로 운영돼 왔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아이들이 안정감을 갖도록 일관성을 강조하며 배려하는 것이 특징이다. 매주 대회가 열리는 북미 지역 골프장 근처 클럽하우스, 교회, 공공 기관, 호텔 등 다양한 공간을 활용한다. 그러면서도 장난감 등 각종 용품은 트럭으로 운반해 늘 같은 것을 쓰고 어린이집 내부도 똑같이 꾸민다. 같은 보육 교사 3명이 상주하고 일과도, 낮잠 시간 음악도 매주 같게 유지한다. 안전을 위해 장소는 공개하지 않는다. 나이와 국적이 다양한 아이들은 함께 모여 공부도 하고 동물원, 수족관 등으로 소풍도 다닌다.

선수마다 경기 시작 시간이 새벽부터 오후까지 다르기 때문에 어린이집은 오전 5시부터 오후 9시까지도 문을 연다. 아이 맡기는 선수들은 이곳이 “구세주”와 같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뿐 아니라 훈련과 재활에 필요한 시간까지 확보할 수 있고,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곳에 아이가 있어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다. 전 세계 랭킹 1위 스테이시 루이스는 “어린이집은 내가 일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사랑하는 골프를 계속하고 싶고, 경쟁하고 발전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어린이집 덕분에 “임신을 결정할 수 있었다”거나 “임신했음을 알았을 때도 골프를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선수들은 말한다.

몇 년 전 한 여성 스포츠 포럼에서 이 사례가 소개됐다. 당시 LPGA 커미셔너는 “선수를 위해 좋은 일이지만 사업적으로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메이저 대회 우승자들이 엄마가 되기 위해 투어를 떠나겠다고 결정한다면 그들에게 재정적으로 곤란한 일일 뿐 아니라, 커미셔너로서 그들에게 투자해온 나에게도 곤란한 일”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보육 등의 자원을 제공해 기회를 만들면 21세, 19세, 17세 선수들이 지켜본다. 어린이집 옆을 지나다닐 때마다 나이 어린 선수들의 생각이 달라진다.” 아이 키우면서 선수 생활 이어가는 모습을 아직 결혼하지 않은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얘기였다.

우리나라 남녀 간 경제활동 참가율 격차는 여전히 OECD 38국 중 일곱째로 크다. 경력 단절을 경험한 여성 비율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42.6%로 높아졌다. LPGA 어린이집은 아이와 부모가 불편 겪는 지점을 섬세하게 포착해 뒷받침하는 보육 지원 제도의 힘을 보여준다. 아이는 사랑받으며 편안하게 성장하고, 부모는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거나 감내하지 않고도 아이를 보살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저출산 문제에도 희망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