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시작은 창대하지 않다. 창대하기는커녕 역대 어느 정부도 겪은 바 없는 적대적 환경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법치주의를 희롱한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독재 앞에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무력하기만 하다. 대선에서 분패한 민주당은 공격적 비토크라시(Vetocracy·상대 정파의 모든 정책을 거부하는 극단적 파당 정치)로 무장해 정권 탈환을 노린다. 지난 주말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의하면 며칠 후 취임할 대통령 지지율(43%)이 정권 교체를 당해 퇴임하는 대통령(45%)보다 낮다. 공정과 상식과는 거리가 먼 첫 내각 인사로 국민적 실망을 안긴 윤 당선인의 자업자득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중앙시장을 찾아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2022.5.2/인수위사진기자단

출범도 하지 않은 윤석열 정부를 연일 공격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존재는 새 정부 앞길의 어두운 그림자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잊힌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요즘 그의 행동은 정반대다. 상대 정파를 악의 세력으로 규정해 적대시하고 자신을 정의와 무오류의 화신으로 자화자찬하는 유사(類似) 파시스트적 행태를 임기 마지막까지 반복한다. 5년 내내 적과 동지의 이분법과 미증유의 무능으로 민생을 파탄 낸 대통령이 퇴임 이후에도 맹목적 정치 팬덤을 누리는 현실은 한국 민주주의의 타락을 증언한다.

윤석열 정부는 110개나 되는 국정 과제를 나열했지만 가장 중요한 국정 철학이 총체적 실종 상태다. 국민을 감동시킬 기회인 첫 내각 인사를 실패하고 대통령실 이전 문제로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의 정당이 다른 상태가 분점정부(分占政府·Divided Government)다. 게다가 윤 정부는 절반을 훌쩍 넘는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차기 총선까지 2년간 더 견뎌야만 하는 열악한 처지다. 그럼에도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라는 식상한 구호를 국정 목표로 앞세울 정도로 위기 의식이 없다. 87년 체제 통틀어 최악의 적대적 환경에서 출범한다는 인식 자체를 결여한 것이야말로 윤석열 정부의 최대 위기다.

결과는 초박빙이었지만 20대 대선 민심에선 정권 교체 여론이 정권 유지 여론을 줄곧 압도했다. 민주당 집권 연장을 거부한 민심이 윤 정부에 바란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문재인 정부의 대중 독재로 궤도 이탈한 대한민국을 제 자리에 돌려놓으라는 요구다. 문 정부는 촛불 정부를 자임하며 민주주의를 부르짖었지만 민주 제도를 악용해 민주주의를 해체하는 것이 현대 독재자다. 민주공화정을 지탱하는 법치주의와 의회주의를 무력화시킨 민주당의 검수완박 폭주도 ‘합법적 다수결’의 형식을 충족한다. ‘대중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이 자라난다’는 역사적 교훈을 절감하게 된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민주당의 폭거에 침묵하는 지식인들은 선거 패배로 정권을 내놓는 정권이 어떻게 유사 파시스트일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문재인 체제에서는 정권 교체 가능성이 남아 있었고 비판적 공론장이 잔존했기 때문에 부드러운 파시즘이자 연성 독재였던 것이다. 부동산 정책과 소득 주도 성장의 총체적 실패로 민생이 파탄 났어도 민주당은 재집권에 거의 성공할 뻔했다. 대한민국이 용인하기 어려운 후보를 내세운 것이 민주당에겐 ‘천려일실(千慮一失)’이었고 나라엔 ‘천행(天幸)’이었을 뿐이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법의 지배(rule of law)’는 권력자가 법을 통치 수단으로 악용하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거부한다. 검수완박 법안은 힘센 자들이 결탁해 ‘법에 의한 지배’를 노린 반민주적 악법의 결정판이다. 문 정부가 합법적 다수결로 민주주의를 무너트린 출발점이 이른바 ‘적폐 청산’이었고 중간 지점이 조국 사태와 언론중재법이었으며 그 종착점이 바로 검수완박이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검수완박으로 법 위의 성역(聖域)인 ‘사회적 특수 계급’을 창설함으로써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통째로 부인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선 21세기 공화 혁명의 시대 정신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 철학으로 승화되어야만 한다. 공화 혁명의 지상 명제인 협치와 공존은 이념·세대·지역·진영·성별로 쪼개진 한국 사회를 치유할 처방전이다. 그러나 협치와 공존을 내세워 민주주의 파괴 범죄에 눈감아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 오늘의 시대정신이 거악을 벤 검객 출신 정치 신인(新人)을 대통령으로 불러 올렸다. 공화정의 적(敵)을 혁파하라는 준엄한 시대의 부름에 윤 대통령이 침묵한다면 역사의 소명을 배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