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동 서울 도시개발공사 사장은 “강남 5억원, 강북 3억원에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시세 30% 수준에 아파트 공급을 자신하는 비결은 ‘토지 임대부 주택’이다. 공공이 토지를 소유하고 건물만 분양해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추는 방식이다. 건축비는 지역에 상관없이 보통 평당 500만원 안팎이지만 땅값은 지역에 따라 수십 배 차이가 난다. 아파트 가격은 건축비가 아닌 토지 가격이 좌우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기본주택,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역세권 첫 집 주택’도 토지 임대부 방식을 일부 채택했다. 홍준표 의원이 2006년 토지 임대부 주택을 공론화했고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토지 임대부 주택 지지자들은 자가 보유율이 90%에 달해 ‘서민 주택 천국’이라는 싱가포르 사례를 들어 집값 문제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성공은 토지 임대부 방식 때문이 아니다. 홍콩, 중국도 토지 임대부 정책을 채택하고 있지만 집값 폭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등 유럽 국가들도 과거 토지 임대부 정책을 채택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싱가포르의 성공 요인은 뭘까?
◇토지 국유화, 국민연금 대출
싱가포르는 국민의 80%가 HDB(주택개발청·Housing&Development Board)가 공급한 토지 임대부 주택에 살고 있다. 토지는 99년 임대하는데 분양가에 토지 임대료가 포함돼 있어 사실상 자가 소유이다. 방 3개짜리 아파트가 보통 2억~3억원 수준으로 저렴하다. 평생 2번 구입할 수 있지만, 생애 첫 내 집 마련에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
1960년대만 해도 싱가포르는 주택 대부분이 슬럼가였고 자가 보유율이 9%에 불과했다. 리콴유 초대 총리는 “사회적,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는 자가 소유가 필수적”이라며 집 소유 사회(a home-owning society)를 선언했다. 택지와 건설비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몽상에 그쳤을 것이다.
건국 초기부터 토지 국유화를 추진했다. 강제 몰수가 아니라 보상에 의한 토지 수용으로, 현재 토지 국유화율이 90%에 달한다. 주택 건설 비용은 연금과 주택담보대출의 결합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당초 중앙후생기금(Central Provident Fund, CPF)은 한국의 국민연금과 마찬가지로 노후 보장이 주 목적이었다. 그러나 1968년 공공 주택에 CPF 적립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꿨다. 공공 주택을 분양받으면 CPF 기금을 통해 1차 조달하고, 모자라면 주택개발청(HDB)에서 융자를 받는다. 임금 대비 기금 적립률이 근로자 임금의 최고 20%, 사업주는 16%까지 내야 한다. 노후와 집 마련을 위한 일종의 강제 저축이다. 원리금은 장기 상환하는데 실질 금리가 1%대로 저소득층은 집값의 최대 40%까지 정부가 지원한다.
◇교통망 개발 후 고밀도 신도시건설
저렴한 주택 공급의 또 다른 비결은 장기적 계획에 따른 고밀도 개발이다. HDB는 간선도로, MRT(지하철, 교외는 지상화) 등의 대중교통망과 연계해 23개 뉴타운과 3개 주택단지를 개발했다. 주택 절대 부족 시대인 1970년대에는 방 2개 아파트 공급이 중심이었지만 1980년대 3실, 1990년대 3~4실, 2000년대 이후 4~5실 중심으로 아파트를 공급했다. 2018년 3월 기준으로 공공 주택 중 방 3실 아파트가 24.2%, 방 4실이 41.9%, 방 5실이 24.3%다. 1실, 2실은 0.03%와 0.2%에 불과하다. HDB는 초고층 고급 아파트도 공급한다. 시니어 주택 등 수요자 맞춤형 공급도 특징이다. ‘공공 주택=소형 주택=싸구려 주택’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한국과는 정반대다.
◇5년 의무거주 후 시세차익 허용
한국에서는 ‘99년 토지 임대’에 초점을 맞춰 싱가포르 HDB 주택을 임대주택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토지 임대부 주택을 매매할 경우, 분양가 정도에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들이는 법률까지 만들어졌다. 시세 차익을 지나치게 제한하면 사실상 임대주택이다. 싱가포르 토지 임대부 주택은 5년 의무 거주 기간이 끝나면 재판매 시장을 통해 시세 차익을 남기고 매매할 수 있다. 우리 돈으로 2000만~4000만원의 부담금만 내면 된다. 구입가의 2~3배 시세 차익을 남겨도 민간 아파트를 구입하면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매매를 제한했다. 주택 공급이 늘어나면서 HDB 주택을 중산층 자산 축적 기회로 활용하라며 매매를 허용한 것이다.
정부 규제를 받지 않는 민간 주택의 비율은 15% 정도이다. 민간 주택 시장은 철저하게 시장 자율에 맡긴다. 수십억원, 수백억원 하는 고급 주택도 많다. 한국의 분양가 상한제 같은 규제 자체가 없다. 단기 매매가 아니면 양도세가 없다. 다만 다주택자와 외국인 법인에 대해서는 취득세를 중과세한다. 2주택은 세율이 12%, 3주택 이상은 15%다. 외국인(20%)이나 법인(25%)도 더 많은 취득세를 내야 한다.
[토지임대부 채택한 홍콩·중국은 집값 폭등]
토지임대부 주택의 원류는 국유지가 많았던 유럽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시가 1907년 저렴한 주택 공급과 지가 상승에 따른 불로소득 환수를 위해 토지임대부 주택을 도입했다. 당시 스톡홀름시는 토지의 70%를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능 정책이 아니었다. 저렴한 가격에 분양받은 초기 계약자는 큰 혜택이었지만, 비싼 가격에 되팔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가와 지가 상승이 토지 임대료에 반영되면서 저렴한 주택 공급이라는 명분도 퇴색했다.
토지임대부 주택을 채택한 나라의 공통점은 높은 국유지 비율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암스테르담 토지의 80%가 국유지였다. 프랑스도 1964년 이 제도를 도입했지만, 국유지가 많지 않아 일부 주택에만 적용됐다.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싱가포르는 건국 당시부터 토지국유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만병통치약은 없다. 지규현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토지임대부 주택을 시행한 국가의 집값 안정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집값이 비싸기로 악명 높은 홍콩과 중국도 토지 사용권만 매각한다. 이명박 정부가 강남에서 공급한 토지임대부 아파트는 분양가 대비 7~8배 가격이 올랐다. 최초 계약자만 ‘로또 분양’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10년 의무 거주와 매매 시 LH에 우선매각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시세 차익이 불가능, 사실상 임대 아파트다. 이상영 명지대 교수는 “토지임대부 분양 방식은 공급 규모가 작을 경우, 혜택을 본 계층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유 경기대 교수는 “장기적으로 의미 있는 정책이지만 토지 비축을 통해 저렴한 택지의 확보를 추진한 후 대량 공급이 가능한 시점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