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끊어지고 물도 안 나온다. 밥은커녕 변기 물도 못 내린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멈춰 24층 집까지 걸어 올라갔다”…. 지난 9월 말 중국 동북 지역 주민들은 예고 없이 일어난 대정전 사태로 큰 고통을 겪었다.

랴오닝성 선양(瀋陽)시 일부 지역에서는 9월 23일 밤 정전으로 신호등이 꺼지면서 도로 교통이 마비됐다. 한 주민이 올린 영상을 보면 주변 아파트와 공단이 모두 불이 꺼진 가운데, 자동차 행렬이 오고 가지 못한 채 길게 늘어서 있었다. 랴오양(遼陽)시의 한 주물 공장은 환풍기 가동 중단으로 공장 안에서 일하던 23명의 직원이 유독가스에 중독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13년 만의 대정전

헤이룽장성은 백화점과 대형 상가들이 영업 종료 시간을 오후 4시로 앞당겼고, 지린성에서는 환풍 장치가 멈추면서 한 가구 식구 3명이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는 일을 겪었다. 동북 지역의 한 전력 전문가는 현지 언론에 “이런 대정전은 2008년 이후 13년 만인 것 같다”고 했다.

지난 9월 중국 대정전 사태는 전국 20여 개 성·시(省市·성 및 직할시)에서 발생했지만, 동북 지역은 그중에서도 피해가 가장 컸다. 다른 성·시는 대규모 전력을 쓰는 공장을 중심으로 단전, 제한 송전이 이뤄진 정도였지만, 동북 지역은 공장은 물론 일반 주민들도 수십만 명이 피해를 보았다.

이번 대정전 사태는 전력 수급 불안이 주요인이었다. 세계 경제가 코로나19에서 회복되면서 공장 가동률이 올라 전력 수요는 급증했는데, 석탄 가격 급등에 직면한 화력 발전소들이 그에 맞는 전력을 공급하지 못한 것이다. 광둥·저장·장쑤성 등 중국 동남부 지역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반면, 공업 시설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동북 지역은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정전의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과도한 풍력 의존이 부른 정전사태

중국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대대적인 풍력·태양광 발전소 건설에 들어가 풍력과 태양광 모두 세계 1위 발전 대국이 됐다. 작년 말 기준으로 전체 발전 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풍력 13.0%, 태양광 11.5%로 합쳐서 24.5%에 이른다.

동북 3성은 그중에서도 모범으로 꼽히는 곳이다. 신재생에너지 개혁 중점 시범 지역으로 풍력과 태양광을 합친 신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이 전체의 26%를 차지한다.

문제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은 기후 변화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해서 전력망에 큰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발전량이 줄었을 때 그를 대신해줄 별도의 전력원이 없으면 대규모 정전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한데, 아직은 가격이 비싸 보급이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동북 지역 정전 사태도 풍력 발전이 갑자기 줄어들면서 일어났다. 이 지역은 겨울부터 봄까지 바람이 세게 불어 풍력 발전량이 급증했다가 여름철에 큰 폭으로 떨어진다. 올해 5월 126억kWh(킬로와트시)까지 올라갔던 발전량이 8월 68억kWh로 감소했다. 9월은 그보다 더 떨어져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영국·호주 등도 비슷한 피해

그동안은 이런 특성에 맞춰 풍력 발전이 왕성할 때는 남는 전력을 인근 다른 성에 보내고, 부족할 때는 다른 성 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가져다 썼다. 그런데, 올해는 다른 지역도 전력이 부족해 전력을 가져다 쓸 수 없게 되자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정전 당시 동북 지역은 전기 사용량에 비해 공급량이 10~20% 부족한 2등급(주황색) 경보가 발령된 상태였다. 결국 전력망의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일부 지역의 전력 공급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불러온 정전 사태는 중국만의 일은 아니다.

2016년 9월 호주의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가 토네이도로 인한 풍력 발전 출력 저하로 85만명이 피해를 입은 대정전 사태를 겪었다. 이 지역의 풍력·태양광 설비 용량은 전체의 48%를 차지한다. 영국도 2019년 8월 런던을 포함한 잉글랜드 남동부와 웨일스 지역이 풍력 발전 고장으로 인한 대정전 사태를 겪었다. 정전 사고 당시 풍력발전의 전력 공급량은 전체의 47.6%를 차지했다.

◇2025년까지 정전 사태 계속된다

중국 내에서는 신재생에너지가 아직은 ‘대임(大任·주력 전력원)’을 맡기에 부족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중국의 풍력·태양광 설비 비율은 24.5%에 이르지만 실제 발전량은 풍력 6.1%, 태양광 3.4%로 10%에도 못 미쳤다.

중앙재경대 국제금융센터 장치디(張啓迪) 연구원은 “현재의 전력 기술 수준과 신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감안하면 풍력·태양광 발전 비율이 전체의 5~10%만 돼도 이미 높은 수준”이라며 “동북 지역은 풍력 발전이 전체 공업용 전력 수요의 34%를 감당할 정도로 너무 높았던 것이 대정전의 원인”이라고 했다.

이런 정전 사태가 5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2030년까지 탄소 배출 정점을 찍고 2060년까지 탄소 제로를 이룬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이후 석탄 산업 구조조정, 화력발전 비중 축소 등을 강도 높게 추진 중이어서 화력 발전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신재생에너지도 출력이 불안정해 정전 사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펑융성(馮永晟) 중국사회과학원 재경전략연구원 부연구원은 대만중앙통신에 “출력이 불안정한 신재생에너지가 전력망에 대거 편입되면 발전량 기복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2025년까지 더 큰 범위에서 더 심한 전력 부족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대안은 원전”… 올 상반기에만 6기 줄줄이 착공

중국은 동북 지역 대정전 이전에도 신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 문제로 골치를 앓아왔다. 풍력·태양광이 풍부한 북부 지역과 전력 수요가 많은 동남부 공업지대가 너무 먼 것도 문제였다.

올해 3월 31일 열린 중국 하이난성 창장원전 3·4호기 착공식. 중국 정부가 원전 확대를 기조로 한 14차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2021-2025)을 확정한 이후 처음으로 착공한 원전이다. /중국화능

중국이 2011년 이후 멈췄던 원전 건설을 재개한 것은 이런 신재생에너지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당분간 신재생에너지가 주력 전력원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출력이 안정적이고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원전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2020년 기준 중국 원전 발전 용량은 전체 전력원의 2.3%이며, 실제 발전량은 4.8% 수준이다.

중국은 2019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중단해온 신규 원전 허가를 재개했고, 올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 격)에서는 원전 건설을 대폭 늘리는 내용의 14차 경제사회 개발 5개년 계획(2021~2025)을 확정했다. 10월 26일 발표한 ‘2030년 탄소배출 정점을 달성하기 위한 행동 방안’에서도 “원전을 질서 있게 발전시킨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중국은 올 상반기에만 6기의 원전을 줄줄이 착공했다. 3월 말 하이난성 창장원전 3·4호기를 착공한 데 이어 5월에는 산둥성 톈완 원전 7·8호기, 랴오닝성 쉬다바오 원전 3·4호기 공사가 시작됐다.

중국은 작년 프랑스를 넘어 세계 2위 원전 대국이 됐다. 일본 닛케이신문은 “현재 건설 중인 11기의 원전이 가동에 들어가면 2030년에는 미국을 추월해 세계 1위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원전이 신재생에너지의 활용도를 높여줄 것으로 본다. ‘원전+신재생’이 탈탄소로 가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는 것이다. 중국원자력과학연구원 당서기이자 정협 위원인 뤄치(羅琦)는 “원전은 탄소 배출이 적으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해 신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보완할 수 있다”며 “원전 확대가 저탄소 에너지원의 활용 공간을 넓혀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