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식 앞에는 도시 이름이 붙는다. 그곳에서 시작된 연유도 있고, 특별히 맛있거나 스타일이 달라서 그러기도 한다. 전주 비빔밥이나 춘천 닭갈비, 나폴리 피자나 버펄로 윙 등이 대표적인 예다. 물론 요즈음은 다른 도시, 다른 나라에서도 오리지널 비슷하게 흉내 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는 어디 ‘스타일’이라고 하는 게 맞는다.

폴란드에 살던 유대인들이 19세기 미국으로 이민하면서 만들기 시작한 베이글은 비싸지 않은 가격에 고칼로리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장점으로 뉴요커들의 대표 음식이 됐다./박진배 뉴욕 FIT 교수

가죽처럼 반짝이면서 퉁퉁하고 가운데 구멍이 난 베이글 앞에는 ‘뉴욕’이 붙는다. 베이글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나 브로드웨이만큼 도시를 대표한다. 폴란드에 살던 유태인들이 19세기 이민을 오면서 만들기 시작한 이 빵은 비싸지 않은 가격에 고칼로리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장점으로 뉴요커들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 요즈음은 다른 도시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맛 차이가 크다. 바로 뉴욕의 물 때문이다. 미네랄이 풍부하다고 알려진 뉴욕의 물은 무미(無味)가 아니고 유미(有味)다. 이 물은 와인의 테루아(terroir·토양의 특성)로도 비교된다.

뉴요커들이 베이글을 먹는 방법은 매우 까다롭고 구체적이다. 우선 공장 제품은 안 되고 반드시 수제품이어야 한다. 현 뉴욕 시장인 더블라지오 (Bill de Blasio)가 베이글을 토스트해서 먹고 트위터에 인증했다가 “역시 보스턴 출신이어서 제대로 먹을 줄 모른다”는 비판을 받고 삭제한 적이 있다. 뉴요커들은 베이글을 토스트해서 먹지 않는다. 오늘 새벽 오븐에서 구워져 나와 신선하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제빵사들은 한밤중에 출근해서 전날 숙성시킨 반죽으로 동그란 모양을 만든다. 오븐에 굽기 전에 물에 끓이는 독특한 공정에서 속이 쫄깃한 베이글 특유의 식감이 만들어진다. 하루에 수만 개가 소비되는 도시의 대표 음식을 즐기는 방법을 지켜나가는 뉴요커의 유별난 태도가 흥미롭다.

뉴욕의 제빵사들은 한밤중 출근해서 전날 숙성시킨 반죽으로 동그란 모양을 만든다. 오븐에 굽기 전 물에 끓이는 독특한 공정에서 속이 쫄깃한 베이글 특유의 식감이 만들어진다. 새벽에 구워 신선하기 때문에 뉴요커들은 베이글을 토스트하지 않는다./박진배 뉴욕 FIT 교수

참고로 20세기 초에는 유태인들이 ‘베이글 제빵 노동조합’을 만들고 기술자를 양산해냈지만, 현재 이 일은 많은 태국 이민자가 그들 나름의 카르텔을 만들어 하고 있다. 베이글과 단짝 궁합인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역시 필라델피아가 아닌 뉴욕에서 탄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