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하 조국)은 한국 역사를 통틀어 흥미롭고도 중요한 인물이다. 후흑학(厚黑學)의 정수를 보여주는 조국의 독특한 캐릭터가 ‘이준석 현상’과 맞물려 한국 정치의 급변을 촉진한다. 청나라 말기 지식인 리쭝우(李宗吾·1879~1944)는 ‘뻔뻔함과 음흉함’(面厚心黑·면후심흑)을 난세의 통치술로 설파했다. 조국 회고록 ‘조국의 시간’은 절정(絶頂)의 후흑학을 증언하는 기념비적 보고서다.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찾은 한 시민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회고록 ‘조국의 시간'을 읽어보고 있다. /뉴시스

조국은 자신이 쏟아낸 거짓말과 내로남불로 쌓은 ‘조만대장경’ 앞에서도 태연자약하다. 그의 아내 정경심 교수는 1심 법원에서 범죄 혐의 총 15가지 중 10가지를 유죄로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조국 자신도 11가지 혐의로 재판받고 있지만 순교자 연기(演技)에 지칠 줄 모른다. 불세출의 뻔뻔함과 음흉함을 화사한 낯빛으로 분장해 ‘순결한 정의의 사도 이미지’(不厚不黑·불후불흑)를 연출한 후흑의 최고봉이다. 열광적 추종자들은 이런 조국에게 환호한다. 그 대가는 총체적 재앙이었다. 불의가 정의를 겁박하고 선악이 뒤집히는 집단 착란이 온 나라를 휩쓸었다.

조국의 야망(心黑·심흑)과는 달리 그가 부활해 대통령으로 승천하는 조국의 시간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의 후흑이 촉발한 조국 사태가 너무나 많은 한국인을 절망에 빠트렸기 때문이다. 정의와 공정이 문재인 정권의 가장 약한 고리로 떠오른 계기도 조국 사태다. 하지만 조국이 제작·주연한 ‘후흑 쇼’의 최대 효과는 그의 몸부림이 정치판의 새 판 짜기를 앞당긴다는 데 있다. 문 정권과 진보 진영 전체를 망가뜨리더라도 자신만은 살아남겠다는 ‘후흑 선생 조국’의 처절한 생존 의지는 한국 역사의 변화를 강제한다. 일찍이 철학자 헤겔은 반동적 개인의 뒤틀린 욕망이 역사의 진보를 가져오는 아이러니를 ‘역사의 간지(奸智)’라고 불렀다.

국민의힘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대구·경북 합동연설회가 열린 3일 오후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이준석 후보가 발언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조국의 시간은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을 강타한 이준석 현상을 일대 돌풍으로 키우는 데 기여한다. 문재인 정권의 불의와 불공정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하 윤석열)을 정치적 태풍으로 만든 것과 같은 이치다. 대담집 ‘공정한 경쟁’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이하 이준석)는 실력과 실력주의야말로 21세기의 시대정신이라고 역설한다. 공정한 경쟁이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는 강력한 주장이다. 이준석의 공정 경쟁론은 조국의 시간과 만날 때 폭발력이 극대화한다. 조국이야말로 특권과 불공정 경쟁의 살아있는 화신이기 때문이다. 문 정권의 총체적 실정으로 공정한 경쟁 기회조차 빼앗긴 20대 청춘들이 이준석의 실력주의 담론에 뜨겁게 호응하는 이유다.

건국 이후 한국 현대사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적대적 공존 관계로 압축된다. 6공화국 출범과 동행한 노태우 정부(1988~1993)가 군사정권에서 문민 정권으로 가는 과도기라면, 그 후 6공화국 정치 전체가 보수 집권(김영삼·이명박·박근혜 정권)과 진보 집권(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으로 반분(半分)된다. 박근혜 정권은 재현 불가능한 박정희 모델인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에 함몰돼 수구 보수로 퇴행하다가 탄핵되었다. 문재인 정권은 연성 파시즘의 적대 정치로 민주주의와 정의를 파괴해 수구 진보로 역진(逆進)하면서 몰락 중이다. 수구 보수와 수구 진보의 합작이 역사를 망쳤다.

이준석 현상은 한국 정치를 옥죄어 온 산업화·민주화 대립 구도를 단숨에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만든다. 용암이 솟구치는 것 같은 변화의 열망이 홀로 뛰는 이준석을 한국 정치 태풍의 눈으로 키운다. 문 정권 황태자 조국의 추락을 부른 민심의 폭풍이 ’36세 0선 청년'을 강력한 제1 야당 대표 후보로 밀어 올리고 있다. 민심은 한국 사회의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유능한 정치 세력을 갈망한다. 진보·보수 진영 전쟁의 적대적 공생 구도를 넘어 미래로 가는 통합 정치의 리더십을 갈구한다.

박근혜·문재인의 처참한 대(大)실패로 산업화·민주화 세력의 적대적 공존 관계는 영원히 끝났다. 옛것은 사라졌지만 아직 새것은 오지 않았다. 윤석열처럼 이준석의 비전도 여물지 않았고 비르투(virtu·능력)도 검증 단계다. 하지만 보수·진보 간 적대적 공생의 시효(時效)가 끝난 공간엔 폭발적 정치 에너지가 흘러넘친다. 이준석 돌풍은 민주를 넘어 유능한 공화(共和)의 시대를 알리는 섬광(閃光)이다. 조국의 시간을 타고 날아오른 이준석 현상이 태풍으로 커지고 있다. 진보·보수 앙시앵레짐(구체제)이 굉음을 내며 무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