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국제 개발협력 기본계획’이란 걸 발표했다. 개발 협력이란 개발도상국(개도국)의 빈곤을 퇴치하고 발전을 돕는 일을 말한다. 해방 직후 원조받는 나라에서 이제는 원조하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은 글로벌 개발 협력에 적극 나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국제 개발협력 기본계획 캠페인/페이스북

그런데 이번 기본 계획에서 내세운 새 비전은 마뜩잖은 점이 있다. 새 계획은 ‘협력과 연대를 통한 글로벌 가치 및 상생의 국익 실현’을 비전으로 내세웠다. 협력이나 연대나 상생이나 모두 좋은 말이지만 개발 협력 비전에 ‘국익 실현’을 명시한 것은 우려스럽다. 자칫 개발 협력을 본연의 목적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익을 우선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한때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규모로 개도국에 원조를 주는 나라였다. 일본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7000달러이던 1989년에 이미 국민소득의 0.32%인 89억6500만달러를 공적 개발 원조(ODA)로 제공했다.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경제력만이 아니라 개발 협력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대한 원조를 하는데도 일본은 아시아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자국의 경제적 이익만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개발 협력을 단지 국익 추구라는 입장에서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반면 독일은 달랐다. 독일은 2016년 이래 제2위 원조 공여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독일의 개발 협력은 이주와 난민, 기후변화와 식량 안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독일은 2017년 G20 정상회의에서 ‘보건’을 의제에 포함시켰고, 작년과 올해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각각 18억달러의 추가 원조를 약속했다. 지난해 독일의 ODA는 유엔의 권고 목표인 국민소득의 0.7%를 달성할 것으로 예측된다. 독일이 난민 문제나 코로나19 대응에 글로벌 협력을 촉구하는 것이 설득력을 얻는 까닭은 이런 ODA가 있기 때문이다.

OECD는 한국의 발전 경험이 개도국에 ‘특별한 설득력’을 가질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정부도 과거 원조를 받은 경험과 경제성장 경험을 토대로 한국형 콘텐츠를 지원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어느 때보다 개발 협력 요구가 높아질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개도국에 더 극심한 타격을 입혔기 때문이다. 국경 봉쇄와 이동 제한으로 이주 노동자들의 송금이 줄고 관광 수입도 사라졌다. 보건·의료·교육 등 가뜩이나 취약한 사회 시스템도 멈춰 섰다. 고질적인 기아나 난민 문제도 한층 심각해졌다. 세계은행은 코로나19로 인해 절대 빈곤 인구가 최대 1억5000만명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021년을 ‘가능성과 희망의 해’로 만들자며 글로벌 협력을 촉구했다.

코로나19 백신이 나오자마자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다. 빈곤이라는 지구촌의 고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특효약을 만든다면 그 못지않게 잘 팔릴 것이다. 우리나라는 잘살아보겠다는 국민적 의지와 피나는 노력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촌 빈곤 퇴치에 대한 확신을 갖고 특효약을 만들 수 있다. 단지 국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공동 번영을 위한 것이다. 국내에서 정치권력 차지하려 서로 싸우더라도 누군가는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개도국을 돕는 개발 협력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경제적 이익과 명성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상생의 국익 실현’은 이익의 관점을 넘어설 때 오히려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