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달 25일 제9차 노동당 대회 폐막을 기념하는 열병식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했다. 행사에 참석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와 딸 주애.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노동당 제9차 대회는 경제를 내세웠지만 본질은 권력 재정비였다. 인사와 노선의 재배열을 통해 향후 5년 정책 방향을 명확히 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경제’의 전면 배치다. 총비서 추대 제의문에 “이제는 사탕도, 총알도 다 있어야 한다”는 구절이 등장해 국방 못지않게 민생을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북한 지도부는 정치적 안정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수십 년간 당·보위·사법 기구를 통한 감시와 통제, 처벌이 결합된 공포 정치로 내부 장악력이 강화됐다. 핵무력 등 방위력 또한 체제 안전을 담보할 수준에 이르렀다고 자신한다.

문제는 민심이다. 긴 경제난 속에 주민 생활을 방치한 채 체제 유지와 4대 세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민심을 잡으려면 경제 성과가 절실하다. 체제와 세습을 지키는 문제로 경제가 부상했다.

그러나 북한 경제가 직면한 난관도 분명하다.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대북 제재가 가장 큰 걸림돌인데, 정상적 수출입이 차단되면서 경제 운영은 마비 상태다. 중앙집권적 경제 시스템의 뿌리 깊은 구조적 한계도 겹친다. 수요와 공급, 노동과 보수, 가격과 임금의 불균형이 심각해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고 기업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있다.

‘경제건설 노선’이 실질적 효과를 거두려면 구조적 개혁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는 체제의 이념적·구조적 정통성과 충돌한다. 체제 수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지도부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당대회에서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주민 통제 강화 신호다.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군 인사가 빠지고, 무자비한 ‘처벌주의’의 아이콘 김재룡 조직비서, 무조건적 충성의 상징 리일환 선전비서가 전면에 배치됐다. 처벌과 선전, 즉 통제 수단의 보강을 의미한다. 민심 이반을 공포와 사상 교육으로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통일 지우기’에 주력하는 동안 내부 반발이 상당하다. 생활은 어렵고 북·미 대화도 교착 상태인데, 유일한 희망인 한국과 절연하겠다니, 그 노선을 주민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감시·통제·처벌에 기반한 공포 정치와 사상 교육으로 공백을 메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년간 당 세포비서였던 나는 엘리트층 내부에서조차 숨 막히는 통제에 대한 피로감이 한계에 이른 것을 체감했다. 통제 강화가 과연 장기적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북한엔 “밧줄도 지나치게 당기면 끊어진다”는 말이 있다.

대외적으로는 변화의 조짐이 뚜렷하다. ‘중국통’인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장이 정치국 위원·비서로 승격됐다. 중국과 실질적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신호다. 동시에 최선희 외무상의 정치국 위원 지위는 유지됐다. ‘당 외교’를 통한 중국·사회주의권 연대 강화와 ‘국가 외교’를 통한 러·중·미·일 4강 외교라는 이중 전략이 엿보인다. ‘당중앙’의 대외 사업 관여도 강조했다.

가장 뚜렷한 메시지는 대미·대남 메시지다. 초강경 대미 정책 기조를 유지한 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주면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북미 대화에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 반면 한국에 대해선 강한 비난과 함께 “국익에 준한 냉정한 계산”이라며 변화의 여지를 남겼다. 남북 관계는 결국 북·러 관계, 북·미 관계의 흐름에 따라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북한과 중국 간 국제 여객 열차가 6년 만에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사진은 재개 첫날인 12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 출발해 북한 평양으로 향하는 95번 열차가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중·조우의교’를 지나는 모습. /신화 연합뉴스

중동에서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벌이며 군사적 긴장이 높아졌다. 공습으로 사망한 아버지에 이어 권력을 세습한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결사 항전을 외친다. 한반도 안보에도 불확실성이 더해지는 가운데, 북한도 국제적 파장에 주목하며 전략을 모색할 것이다. 트럼프의 방중(訪中)을 앞두고 북·중 여객 열차가 6년 만에 재개됐다.

인적 구성의 변화도 의미심장하다. 최룡해·박정천·리병철 등 충성의 상징이던 원로 간부들이 씁쓸하게 물러났다. 조용원은 당 조직비서라는 핵심 권력을 내려놓고 실권 없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으로 이동한 것 같다. ‘젊고 능력 있는 피’를 수혈해, 방대한 계획을 추진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향후 5년, 북한은 민생경제 회복을 내세우며 주민 통제를 강화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그러나 구조적 개혁 없이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통제만으로 민심을 붙잡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번 당대회는 변화의 선언이라기보다 늘 그러했듯이 체제 유지를 위한 전략적 재정렬에 가깝다. 이제 관건은 국제 제재와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의 한계 속에서 북한 정권이 민생 회복이라는 현실적 과제를 얼마나 밀어붙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