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설치한 해상 관리 플랫폼 '애틀랜틱 암스테르담'의 이동 경로. 지난 1월 28일 오전 4시20분 기준 해당 구조물 PMZ 경계선으로부터 약 8해리(15km)까지 근접했으며, 이후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 신호가 끊겼다고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밝혔다./ CSIS

서해는 1895년 청나라 북양 함대가 산둥반도 류궁다오에서 일본 해군에 궤멸당하며 중국 몰락의 서막을 연 역사적인 격전지다. 그러나 이제는 미·중 패권 경쟁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 지난달 주한 미군 F-16 전투기 10여 대가 서해 공해 상공에서 대규모 훈련을 하다 미·중이 숨막히는 대치를 벌인 장면은, ‘주한 미군 역할 현대화’ 전략이 본격적으로 가동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동중국해와 서해에서 실시된 특수 훈련 역시 중국을 겨냥한 준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서해 대치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 전투기의 황해 공역 활동을 법규에 따라 감시했고 효과적으로 대응했다”고 밝혔다. 정작 당혹스러운 것은 주한 미군과 우리 국방부 사이에서 불거진 이견이다. 우리 정부가 미측의 ‘사과’가 있었음을 시사하자, 주한 미군은 한밤중에 이례적으로 반박문을 내며 긴장이 고조됐다.

이렇게 공개적인 충돌은 동맹 간 안보 공조 체제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정치도 분열과 이해충돌이 잦은데 아무리 우방이라도 크고 작은 입장 차이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반드시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북한의 오판을 사전에 차단해 더 큰 위기를 방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경험한 ‘한·미 간 엇박자’의 다른 사례는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 이후 안전보장이사회 소집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자 12월 19일 안보리가 소집됐고 남북한 대사도 초치됐다. 당시 주유엔 대사를 맡고 있던 필자는 북한이 북방한계선(NLL) 남쪽에서 이뤄진 우리 측 통상적 훈련을 문제 삼아 연평도를 무차별 포격한 도발을 규탄했다. 북한 대사는 NLL을 인정한 적이 없고 국제법상 무효라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 대사는 1975년 2월 당시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NLL이 북한과 합의되지 않아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한 발언을 강조했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서해 연평도가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북한이 이날 오후 2시 34분부터 약 1시간에 걸쳐 연평도에 발사한 포탄 수십 발로 섬 곳곳이 화염에 휩싸였다.4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했다. /연평도 주민 제공

이에 필자는 1991년 체결된 남북 기본 합의서와 부속 합의서에서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추후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북한 측은 그래도 자기 주장을 늘어놓았지만 남북 기본 합의서의 효력에 대해선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남북 기본 합의서의 진가가 빛난 순간이었다. 그다음 날 우리 군의 NLL 남쪽 해상을 겨냥한 포격 훈련이 예정대로 진행됐지만 북한의 추가 도발이나 일부가 우려한 ‘전쟁으로의 확대’는 없었다.

키신저 장관의 NLL 발언은 미 국무부의 주한 미국 대사관에 대한 1975년 2월 28일 자 훈령 전문에 담긴 내용이다. 30여 년이 지나 대외 비밀 분류가 해제됐고 2010년 12월 블룸버그통신의 보도로 공개됐다. 키신저 장관의 발언 배경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미국이 새로운 국제해양질서를 총괄할 해양법협약 채택을 앞두고 영해를 최소화하고 공해를 극대화함으로써 미 군함과 상선의 자유 항해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추론된다. 그 이후에 미 국무부와 주한 미군 측이 NLL이 국제법상 해양 주권의 경계 개념은 아니지만 전쟁 상태에 있는 교전 당사자 분리를 위한 해양 군사 경계선으로서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한 특별한 역할을 공식화하게 된다. 그사이 키신저 발언에 대한 논쟁이 있었겠지만 1999년 제1차 연평해전을 계기로 한·미가 NLL에 대해 일치된 입장을 재확인한 점이 통합적 대응의 기반이 됐다.

NLL과 함께 서해의 또 다른 위기는 한국과 중국의 해양 경계선, 즉 중간선 확정 문제다. 수교 이후 34년간 이 문제에서 어떤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해양 경계선이 될 중간선을 한국에 더 가까운 동경 124도로 밀어내려 한다. 동경 124도가 중간선으로 확정되면 사실상 서해의 70%를 중국이 차지하게 된다. 이는 남중국해에서 아세안 국가들과 협상할 때 중국이 보여준 패턴과 닮아 있다. 아세안 국가들로 둘러싸인 지중해 1.5배 크기의 남중국해를 중국의 내해화하려 하자 필리핀이 헤이그 국제중재재판소에 제소했다. 2016년 승소했으나 중국이 판결을 무시한 것에서 보듯, 국제법과 현실 사이에는 큰 괴리가 존재한다. 이 사례는 ‘약소국’ 필리핀의 국제 규범 확립 투쟁이 얼마나 어려우면서도 우리에게 자극이 되는지를 일깨워준다. 필리핀이 남중국해를 ‘서필리핀해’로 명명한 것도 국제사회의 관심거리다.

중국의 대만 침공과 북한의 대남도발을 별개로 보는 인식은 매우 위험하다. 중국은 대만해협과 한반도 서해에서 동시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한·미·일 군사력을 분산시킬 수 있어 대만 침공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미국이 추진 중인 ‘동맹 현대화’ 개념을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 대만과 한반도에서 동시 위기가 발생할 때 한·미·일이 어떻게 공동 대응할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서해는 오늘날 동아시아 미·중 패권 경쟁의 최전선이며 한·미 동맹 안보 협력의 시험대다. 정부와 군, 그리고 동맹국들은 차분한 협력과 치밀한 전략으로 이 도전에 대응해야 한다. 불필요한 내부 갈등은 어떤 적보다 더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