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합의한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하 원잠) 도입은 전략적, 기술적,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대한 과제다. 이 프로젝트가 지닌 의미는 무엇이고 성공적 실행을 위해 준비해야 할 사항은 무엇일까.
첫째, 한국은 미국의 해상력 재건에 기여할 수 있는 핵심 동맹국으로 원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는 LNG 운반선부터 첨단 군함까지 세계 선박 시장을 선도하며 정밀 제조, 자동화, 시스템 통합 분야에서 경쟁력이 뛰어나다. 이러한 한국의 역량은 원잠 건조에 필요한 기술적 요구 사항들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특히 도산안창호함(KSS-III)을 독자 설계·건조해 운용해 온 경험과 첨단 선체 설계, 공기불요추진체계(AIP), 저소음 기술, 전투 체계 통합 및 장기 수중 작전 능력을 입증했다는 사실은 이 프로젝트 수행에 강력한 기반이 된다.
둘째, 원잠 설계 및 운용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준수하면서도 가능하다. 프랑스 사례처럼 저농축 우라늄(LEU)을 사용한 해군 원자로가 현실적 대안이며, 차세대 원자로의 핵심 연료인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HALEU) 생산 기반을 한·미가 공동으로 구축할 좋은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HALEU 제조 공급망을 독점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일은 동맹과 미국의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다. 소형 모듈 원자로(SMR) 및 마이크로 원자로에 대한 수요가 민간과 군사 영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동맹 기반의 안정적인 HALEU 공급망 구축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원잠 프로젝트는 전력 확보를 넘어 한미 동맹이 주도하는 차세대 핵연료 공급망 구축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셋째, 치열해지는 해상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의 원잠 보유는 지정학적·군사적 명분을 제공한다. 북한은 핵개발과 탄도미사일 잠수함, 특수작전 침투 플랫폼 등 수중 전력을 고도화하며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원잠은 수중 작전의 지속성과 생존성을 제공하는 필수 전력이다. 한국이 첨단 군사 역량을 갖추고 더 많은 책임을 분담하는 것은 미국의 동맹 현대화 전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형 원잠 도입을 위해서는 몇 가지 조치가 시급하다. 먼저 국내적으로는 특화된 전담 핵 규제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한국은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NRC)를 모델로 한 원자력안전위원회(NSSC)를 통해 세계적 수준의 민간 원자력 규제 역량을 갖추고 있다. 해군 핵 추진 시스템은 민간 원전과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기존의 경험을 바탕으로 원잠의 장기적 운용에 대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독자적 규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AUKUS 체제 아래에서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앞두고 군사 핵 규제 체계를 정비 중인 호주의 사례는 한국이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다음으로 한미 양국은 AUKUS와 같은 조약 차원이나 정부 부처 간 협력 체계를 마련해 기술 공유 및 협력을 제도화해야 한다. 잠수함 원자로 설계 관련 추진 체계 등 후방 영역에서의 협력 범위는 제한적일 수 있으나 전투 체제와 음향 장비, 정보 체계가 집중된 전방 영역에서는 충분히 협력 확대가 가능하다. 양국 해군이 전투 체제와 데이터 구조, 인터페이스를 호환되게 설계한다면, 작전 후 분석과 정보 공유, 연합 작전의 학습 효과가 크게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협력은 최근 미 국가방위전략(NDS)에서 제시한 테크놀로지 중심의 산업 기반 재건 방향과도 부합한다.
마지막으로 한국형 원잠 건조지 선정은 기술적 문제를 넘어, 정치적·전략적·산업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원잠을 설계하고 건조하는 과정에서 일부 공정을 미국 조선소와 분담하는 방식은 산업 기반을 폭넓게 확장하고 공급망 리스크를 줄여 정치적·동맹적 측면에서 실질적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 예컨대 한화 필리 조선소는 한국의 산업 역량과 미국의 노동력 및 시설이 결합되는 상징적 거점이 될 수 있고, 이는 미 해군이 차세대 함정 건조에서 검토 중인 분산식·모듈식 건조 방식과도 궤를 같이한다.
서울과 워싱턴은 이 사업에 가장 적합한 기술 협력과 산업적 배치, 즉 ‘최적의 레이아웃’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원잠 도입의 성공은 전략적 목표와 정치적 판단, 산업적 이해관계가 초기부터 일치할 때 가능하다. 이는 한미 동맹 강화에도 결정적인 변곡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