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경북 경주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신라 왕관을 바라보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 페이스북

취임 후 우상향 곡선을 그리던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광복절을 전후해 쭉쭉 빠졌다. 대통령 지지율이 무작정 오를 수는 없는 일이지만 추세 변화 시점이 너무 일렀고 하락 폭도 너무 컸다.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로 여당 당권을 거머쥔 정청래 민주당 대표, 사면 복권을 받은 조국 조국혁신당 정책연구원장이 앞다퉈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이 대통령이 취임 후 힘들게 쌓은 ‘실용’ 이미지가 손상된 탓이었다.

전략적 사고에 능한 여권 인사들은 “조국 사면 등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다. 일본, 미국 외교 일정을 잘 마치고 민생에 집중하면 지지율은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외교 일정을 잘 마치고 돌아왔다. 야권은 “구체적 성과가 없이 퍼주고 돌아왔다”고 박한 평가를 내렸지만 한미 정상회담 불과 일주일 전에 EU 정상들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 책상 앞에 줄지어 앉아 훈계를 듣던 모습에 비하면 선방이다.

한숨 돌린 이 대통령은 귀국 다음 날 국무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토요일인 그다음 날에는 강릉 가뭄 현장을 찾아 실태를 점검했다. 그다음 날에는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이 “이재명 대통령은 당분간 국민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오늘 밝혔다”며 대통령이 국무회의와 수석보좌관회의를 연달아 주재하면서 국가 성장 전략과 K제조업 대전환을 논의할 것이라 예고했다.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따져볼 것이 많겠지만 이 정도면 대통령 지지율을 제고할 수 있는 ‘실용 드라이브’가 맞다.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 같은 소리를 하던 전임자와 달리 지지율이 왜 중요한지 아는 눈치다.

이재명 정부는 처음으로 자체 예산안을 짜며 내년 그림을 그리고 있다. 과거 야당 대표 때 했던 말을 뒤집어야 하는 분야도 있을 것이고(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그랬다), 국정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후순위 지역이나 계층의 반발에도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지지층 결집보다 중도층의 인정, 반대파의 수용 폭을 넓혀야 국정 동력이 유지된다. 이건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나 강성 지지층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정청래 대표가 이끄는 여당은 대통령 순방 기간에 노란봉투법·방송법을 밀어붙였다. 조국 원장은 ‘민주진보진영의 좌완 정통파 투수’를 자처하며 전국을 돌고 있다. 대통령이나 여권 전체의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되더라도 강성 지지층 입맛에 맞추는 것이 자신에게 더 유리하니까. 사실 어느 조직이건 뒤에서 묵묵히 살림살이 챙기는 사람, 따로 눈도장 찍고 과실 따 먹는 사람 따로 있긴 하다.

문제는 여권의 ‘과실파’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경기도지사 출마가 거론되는 추미애 의원은 당대표까지 지냈으면서 법사위원장을 맡았다. 정청래 대표가 증명했듯 살림살이를 묵묵히 챙기는 것보다 전쟁터인 법사위에서 야당 찍어 누르고 뉴스공장 자주 나가는 게 당내 경선에선 유리하다.

광주 시장으로 거론되는 민형배 검찰정상화특위 위원장은 “추석 밥상에 검찰청 폐지를 올리겠다”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하신 것인가”라고 온건파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공격했다. “서울시장에 출마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고 있다”는 전현희 3대 특검 종합대응특별위 총괄위원장은 한술 더 떠 “사법부가 내란 종식을 방해한다는 국민적 의구심이 있다”고 법원을 압박하며 내란특별재판부의 운을 띄웠다.

경제와 외교 안보·국익 챙기는 것보다, 국정 안정을 위해 야당과 협치 노력을 기울이는 것보다, 발품 팔아 당원 조직 늘리는 것보다, 심지어 대통령 눈에 드는 것보다 지지층을 향해서만 세게 지르면 통한다는 성공 전략이 번지고 있다. 후발 주자일수록 더 세게 나가야 한다. 이 경쟁엔 직업 공무원도 가세했다. 공개 석상에서 법무부 차관과 검찰 고위 간부는 물론 대통령의 핵심 참모 민정수석을 ‘검찰 개혁 5적’이라 규정하고 정성호 장관을 맹비난한 임은정 동부지검장이 선두 주자다.

이들에게 이제 윤석열·김건희 부부나 국민의힘은 가성비가 낮은 상대다. 검찰도 그 효용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제 ‘정성호 같은 온건파나 고위 관료들은 기득권과 야합하는 배신자’라고 공격당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어쩌면 이들의 최종 성공 모델은 이 대통령일지도 모른다. 이런 프로세스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이 대통령이다. 그러니 그 성공 사다리를 끊어내야 할 사람도 이 대통령이다. 사병을 일으켜 왕이 된 태종 이방원이 사병을 혁파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