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칼럼은 수년 전부터 작심하고 구상한 글이다. 그 덕에 비판에 대한 심적 부담은 덜한데, 제목은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상속세 폐지는 재벌만의 사안이 아니다. 모든 기업과 개인도 적용된다. 그럼에도 국민 다수는 상속세 문제를 재벌과 연결해서 인식한다.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논거에도 재벌에 대한 태도가 짙게 깔려 있다. 진보층뿐 아니라 보수층에도 깔려 있다. 그 점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야 사회적 논의가 진전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제목을 재벌 상속세 폐지로 날카롭게 벼린 까닭이다.

한때 나도 상속세 폐지에 반대했다. 나는 당시, 내 상대편의 이중과세와 기업 경쟁력 등의 논거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안심했다. 그런 논거는 상속세 최고 세율이 77%였다가 40%를 유지하며 세계 최고 경쟁력을 자랑하는 미국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핵심을 직시해야 한다.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논거의 핵심에는 불평등이 있다. 상속세를 없애면 가뜩이나 불평등한 대한민국의 부가 극소수 재벌에게 더욱더 집중된다는 우려다. 타당한 우려다.

소유권과 경영권의 안정적 승계는 재벌의 최대 소망이면서 난제다. 가장 큰 난관은 상속세다. 그것을 회피하려 편법 쓰다가 곤욕도 치렀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해서라도 승계해 왔다. 문제는 국민 인식과 정치 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 세대는 영끌까지 하는 주식 세대라서 손해 입는 편법은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중장년 인식도 바뀌고 있다. 정치는 여든 야든 거기에 발맞추고 있다.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시대가 바뀌는 중이다. 상법 개정도 그 증표 중 하나다.

합법적 방법은 상속세 준비금을 충분하게 쌓는 것이다. 그래서 재벌은 매년 연봉과 배당금으로 수백억~수천억 원씩 챙긴다. 재벌은 그 과정에서 반발을 없애려고 직원에게 높은 임금과 성과급을 제공한다. 총수만 챙긴다고 노조가 반발하면 고액 연봉과 배당금이 사회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준비금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벌의 의도대로, 고임금에 취한 노조는 재벌의 고액 연봉과 배당금에 어떤 불만도 표출하지 않는다. 재벌 대기업 정규직 임금의 고공 행진에 담긴 숨은 배경이다. 중소기업 노사는 거북이걸음도 힘겨운데, 재벌 대기업 노사는 나 좋고 너 좋은 토끼뜀을 내달린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 심화의 핵심 원인이다.

상속세가 폐지되면, 재벌이 과도하게 챙길 이유가 줄어든다. 국가 부의 총액과 임금의 사회적 수준을 무시한 채 지급하던 직원 고임금도 조절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할 때 기업에 초과 이윤이 더 남는다는 점이다. 국민은 재벌이 독차지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우려를 해소하면 된다. 그만큼의 초과 이윤을 세금과 기금으로 사회에 환원해서 중소기업 성장 및 사회 안전망에 투입하는 방안이다. 한국 경제 기초 체력 강화와 이중 구조 개선의 재원이 될 것이다. 상속세 폐지로 줄어드는 세수 문제도 해결된다. 대한민국은 재벌에게 안정적 경영을 선물로 제공한다. 재벌은 대한민국에 더 많은 청년 고용 등을 선물한다. 이는 멋진 교환이 될 것이다.

상법 개정으로 재벌의 상속세 부담이 커졌다. 주가가 오르는 만큼 상속 세액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빠르게 가닥 잡아야 한다. 한데 상속세 폐지는 사회적 논란과 정치적 유불리 계산 때문에 단독 의제로는 하세월이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 개선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의 장에서 풀어가는 방법이 있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는 소득 격차뿐 아니라, AI·로봇 시대의 인간 고용, 대기업 취업난과 중소기업 인력난, 유연성과 안정성, 원하청 공정 거래, 경영 환경, 지방 소멸, 저출생 등 고용·노동·경영·복지가 종합적으로 연계된 문제다. 그것을 개선하려면, 많은 영역에서 재벌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중 구조는 노사, 노노, 사사, 세대 등의 갈등이 다층적으로 얽힌 문제다. 모든 이해당사자가 참여해서 서로 주고받아야 풀어갈 수 있다. 재벌은 대타협의 주요 당사자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은 최태원 SK 회장은 “사회 문제를 찾아서 기업도 해결할 수 있는 데까지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필요하다.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도 많이 창출하는 것이 신기업가 정신이다”라고 했다. 지지하며, 더 많은 재벌로의 확산을 기대한다. 거기에 상속세 폐지의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