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국민의힘 전당대회 경선을 보며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정치는 왜 이렇게 바뀌지 않는 걸까. 또 하나의 의문은 ‘윤석열 대통령은 왜 이렇게 무리하는 걸까’이다. 당정 분리가 그토록 어려운가? 결론은 어렵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현실과 이상의 갭이 크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은 반칙투성이다. 경선을 앞두고 갑자기 룰이 바뀌었다. 10년 넘게 정착된 국민여론조사를 없애고, 100% 당원투표로만 뽑기로 당헌당규를 개정했다. 초선 의원 50명이 나서 “대통령 뜻을 왜곡하고, 동료들을 간신으로 매도했다”고 몰아세워, 유력한 후보자를 주저앉혔다. 윤석열 대통령도 직접 나서 모 후보를 “국정 운영 방해꾼이자 적”으로 비난했다.

대통령은 국민의 심판(審判)이다. 공직선거법 57조는 ‘공무원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당내 경선에서 경선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정당법 49조 ‘당대표 경선 등의 자유방해죄’ 조항 2호는 ‘선거운동, 교통 방해, 위계·사술 그 밖에 부정한 방법으로 당대표 경선 등의 자유를 방해한 자’로 돼있다. 윤 대통령이 당대표 경선에 적극 개입해 온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정당민주주의에도 부정적이고, 위법의 소지도 있다. 여론도 긍정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이런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강력한 현실적 이유가 있다. 장제원 의원이 지적한 당정 분리의 ‘아픈 역사’를 살펴보면, 대통령의 처지가 이해된다.

당정 분리를 처음 시도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그가 당총재직을 내려놓고, 공천권을 포기한 것은 정당 민주화를 위한 큰 변화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국정 운영에 큰 문제가 생겼다. 당정 분리가 당정 단절로 나타난 것이다. 그 결과 여당은 국정에서 배제되고, 대통령은 국정 과제를 입법화하지 못했다. 국정 지지율이 한때 12%까지 곤두박질치고, 노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쳤다. 노 대통령은 당정 분리를 후회했다. 정치의 중심인 정당이 무책임에 빠졌기 때문이다. 정당의 빈자리는 더 무책임한 시민단체나 각종 위원회가 채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세종시 수정안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반대로 부결되는 곤경을 겪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도 새누리당 비박계가 찬성했기 때문이다. 정당을 장악하지 못한 대통령의 말로는 이처럼 비참하다. 대통령의 입장에서, 당정 분리나 정당 민주화는 한가한 소리다. 윤 대통령이 앞뒤 보지 않고 저돌적이 된 까닭이다.

사실 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그랬다. 대통령의 통치력(governability)을 지키려면, 정당 민주화에 앞서 정당을 지배해야 했다. 여소야대 분점 정부가 되면, 정계 개편과 정치 연합도 불사했다. 3당 합당과 DJP 연합이 대표적 사례다. 강력한 정당 파워를 가진 김대중 대통령까지는 이게 가능했다. 정당 파워가 없던 노무현 대통령은 아예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 과정에서 국회의 탄핵소추까지 당했다. 20대 총선에 지고, 여당 장악에 실패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당해 5년여를 감옥에서 보냈다.

대통령이 정당 장악에 집착하고, 잘못되면 탄핵까지 당하는 것은 87년 헌정 체제에 근본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87년 체제는 국회와 대통령을 모두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이원적 정통성(dual legitimacy) 위에 서 있다. 서로 타협하지 않으면, 대통령과 국회의 전쟁을 막을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대통령이 ‘오기’를 꺾지 않고, 대통령의 오만에 국회가 ‘분노’하면 곧 파국이 닥친다. 정당을 장악한 김대중 대통령까지 제왕적 대통령들은 그 위기를 관리할 수 있었다. 그 이후는 그게 불가능해졌다. 한국의 대통령은 여전히 제왕적이지만, 국회는 이제 그 대통령을 집이 아니라 감옥에 보낼 수 있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정당 민주화 따위는 주머니에 넣어두고, ‘당정 일체의 원팀 노선’을 고수했다. 정당 민주주의에 집착하다 정당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방탄 정당에 갇힌 것은 그때 정당 민주주의가 심하게 망가졌기 때문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정당 민주주의를 많이 훼손했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 가치인 공정과 상식도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87년 체제하에서 대통령에게는 선택지가 매우 적다. 대통령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없다. 가장 이상적인 대안은 대통령과 국회 사이에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거버넌스를 수립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그 길은 요원하다. 개헌을 포함해 87년 체제의 근본적 문제를 고쳐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지 않으면, 정당의 구태와 대통령의 비극이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