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사, 포스코, KT의 CEO 연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정부의 시각 때문에 연임을 포기하기도 하고 선임 절차를 다시 밟기도 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회사에서 CEO가 사외이사 선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사외이사는 스스로 연임을 하면서 회장의 연임으로 보은하는 ‘셀프 연임’ 구조가 문제이니 앞으로는 투명한 공개 경쟁의 절차를 밟으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한다.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고 보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기업에서 사내·외 이사를 해본 필자로서 정부의 인식에도 문제가 많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11월 1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5대 금융지주 회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먼저 연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버려야 한다. 주인 없는 기업은 없다.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며 모든 주주는 경영을 잘해서 배당을 많이 주고 주가를 올려 주는 CEO가 나타나서 오래오래 연임하기를 원한다.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주요 기업 대부분의 대주주로서 CEO 선정에 간여할 권한이 있지만 누가 보더라도 더 나은 성과를 올릴 만한 후임을 추천하는 주주제안권을 행사해야지, 대책 없이 일단 현직의 연임에 반대하고 보는 방식은 매우 적절치 않다. CEO의 교체는 기업 입장에서 리스크이며, 좋은 성과를 올린 CEO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교체되면 주가는 하락할 가능성이 더 크다. 주주로서 국민연금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대기업들의 CEO는 연임에 연임을 거듭하는 경우가 많다. 후임 CEO 육성과 선임의 모범 사례로 흔히 거론되는 GE의 잭 웰치는 20년, 제프리 이멜트는 16년 재임했다. S&P500 기업 CEO의 평균 임기는 2015년 10.8년이었고 최근 좀 짧아져서 2019년 7.9년이다. 어떤 조직의 장이라도 마르고 닳도록 할 것처럼 몰입하는 사람이 어차피 한 임기밖에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경영 성과가 나을 가능성이 높다.

회장과 사외이사가 서로 짜고 성과도 시원치 않은데 연임을 거듭하는 것을 막고 싶으면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포스코의 경우가 좋은 사례다. 포스코는 사외이사 후보 추천 자문단이 3배수의 후보를 추천하고 이사회는 그 범위 안에서만 뽑도록 하고 있다. 기존 이사도 그 추천을 받지 못하면 연임할 수가 없고 실제로 연임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5명으로 구성된 이 자문단은 매년 한 명씩 교체를 하는데 회장과 사외이사 추천위원회 위원장이 직접 만나서 그 누구의 청탁도 받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모시기 때문에 회장도 기존 사외이사도 차마 청탁을 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포스코 사외이사들은 회장이 자기를 뽑아 주었다는 인식이 전혀 없는 걸 보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개 경쟁만이 공정하고 투명한 방법이라는 미신 타파이다. 이사회가 정말 모시고 싶을 만한 역량이 뛰어난 인물은 공개 경쟁에 잘 응하지 않는다. 이미 어딘가 다른 큰 기업의 CEO로서 좋은 성과를 올리면서 연임을 거듭하고 있는 역량이 검증된 사람이 공개적으로 다른 회사의 CEO 공모에 응할 것 같은가?

모든 기업이 CEO 선임 과정을 비밀에 부치는 이유는 그래야 괜찮은 사람들이 응모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공개를 전제로 하면 떨어져도 크게 손해 볼 게 없다는 수준의 인재들만 꼬인다. 롱 리스트에서 쳐내는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외부에 졸속으로 비칠까 봐 짐짓 시간을 끌어도 한계가 있다. 포스코 회장 선출 시에 공모도 하면서 참으로 광범위하게 추천을 받았지만 좋은 사람은 나서지 않았다. 이 사람을 뽑자 싶은 외국인이 한 명 있었는데 최종 심층면접에 오지 않았다. 헤드헌터사(社)를 통한 추천을 승낙한 것은 이사회에서 추대해 주면 올 생각이 있다는 의미였는데 이 사람에게 면접 테스트를 받으러 오라고 한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실례였다.

주인 없는 기업으로 인식되는 기업에는 어차피 정부가 낙점한 사람이 있을 거라는 선입관도 좋은 사람들이 응모를 안 하는 이유다. 일말의 자존심이라도 있는 사람이 정부가 낙점한 사람이 따로 있는 판에 들러리나 서고 싶어 하겠는가? 이번에도 정부는 이들 기업의 CEO 선임에 정부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구나 하는 인식을 더 굳혀 준 것 같다.

이 나라에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지지부진하고 주가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는 근본 원인은 정부의 간섭과 규제다.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가 개입하면 더 멀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