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제작사인 싸이런픽쳐스는 전 직원이라고 해 봐야 달랑 두 명뿐인 회사다. 김지연 대표를 제외하면 직원 한 명뿐인 초미니 제작사. 이런 작은 회사에서 세계 1등 드라마를 만들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의외의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김 대표는 소설가 김훈의 딸이다. ‘오징어게임’이 미국에서 1등을 차지했다는 뉴스가 처음 나온 날, 아버지가 딸에게 물었다고 한다. “너희도 이제 방탄소년단처럼 되는 거냐?” 48년생, 아직도 연필로 글을 쓰는 작가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어떻게 보는지 모른다. 물론 가입한 적도 없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이 잔혹 동화 같은 드라마의 대성공으로 사람들은 이제 넷플릭스 계약 조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됐다. 이런 ‘글로벌 대박’이 나더라도 추가 인센티브는 0원이라는 것. 모든 수익은 넷플릭스 독식이다. 그렇다면 이 불리한 조건에도 왜 넷플릭스를 찾아가는가. 연출자인 황동혁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알고서 계약서에 사인한 거다. 2018년 넷플릭스에 직접 제안했다. 넷플릭스가 없었으면 어디서 이런 예산으로 이렇게 수위 높은 작품을 만들었겠나.”

고위험 고수익의 흥행 산업에서 넷플릭스는 수익도 독점하지만, 망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제작비는 선불이고 참견도 없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볼 때다. 넷플릭스는 왜 한국에 관대한가. ‘오징어게임’ 제작비는 약 200억원. 9부작이니 회당 제작비는 22억이 조금 넘는다. 달러로 환산하면 200만달러 정도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영미권의 넷플릭스 초대형 히트작들이 있다. ‘오징어게임’ 이전까지 1등이었던 ‘브리저튼’은 회당 700만달러,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일생과 성장을 그린 ‘더 크라운’ 시리즈는 회당 무려 1300만달러, 시즌 4를 찍고 있는 인기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는 한 편 만드는 데 1200만달러다. 반면 ‘오징어게임’ 제작비는 반의 반도 안 되는 수준.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초록색 추리닝’을 입고 응원하고,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내게 영감을 준다”고 감탄한 이면에는 한국의 이런 놀라운 가성비, 수익률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수익률의 진실이 ‘오징어게임’의 성과를 갉아먹을까. 그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연필 하나면 시작할 수 있는 문학과 달리, 영화와 드라마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는 산업이기도 하다. 한국 반도체와 자동차의 과거와 오늘을 보라. 하청 국가로 출발해 오늘의 대한민국에 이르렀듯, 대중문화 역시 마찬가지. 예술로서 존재하는 의미와 별도로, 산업과 비즈니스일 때는 후발 국가의 전략이 있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넷플릭스의 경영 전략을 소개한 책 제목은 ‘규칙 없음’이다. 하지만 규칙 없는 성공은 없는 법. 이 책을 헤이스팅스와 함께 쓴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에린 마이어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눈은 둘, 귀도 둘, 하지만 입은 하나.” 무슨 의미일까. 중국인도 미국인도 한국인도 입은 하나지만, 눈과 귀는 둘이다.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은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언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함께 보고 들을 수 있는 세상은 그 두 배 이상이라는 것.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국가의 대중문화가 세계를 노릴 때, 핵심 열쇠가 있다. 콘셉트(concept)는 높게, 콘텍스트(context)는 낮게. 주지하다시피 ‘오징어게임’의 주제는 자본주의 사회의 치열한 경쟁과 불평등이었다. 하이 콘셉트. 하지만 이를 표현하는 맥락은 초등생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동심의 게임들이다. 언어에 의존할 필요 없는, 특별한 설명이나 기초 지식은 필요 없는 로(low) 콘텍스트.

다시 소설가 김훈에게 돌아온다. 그는 “글쓰기는 비천한 기예일 뿐”이라고 자조한 적이 있다. 삶의 엄정함과 대비하려는 문학적 역설이겠지만, 딸이 만든 ‘오징어게임’은 지금 전 세계에서 삶의 엄정함과 한국 대중문화의 탁월함을 실시간 각성시키는 중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오징어게임’이 벌써 에미상 유력 후보라는 언급이 외신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과 BTS의 빌보드 석권에 이어 드라마로 확장되는 K대중문화 시대다. ‘국뽕의 과잉’도 삼가야겠지만, 넷플릭스 좋은 일만 시켜줄 뿐이라는 주장은 자학일 뿐. 오늘만 살고 말 건가. 한국 대중문화의 미래는 지금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