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고교 수학여행 때였다. 한데 모여 아침을 먹고 나니 학년주임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며 “다같이 애도하자”고 했다. 중요한 분이 돌아가셨구나, 생각하며 주위 친구들과 함께 눈을 감고 묵념했지만 솔직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17년 전 일이 떠오른 것은 올해 초 제기된 선거 연령 하향론 때문이다. 교육부 장관과 진보 교육 단체들은 물론, 야당 대표까지도 투표 연령을 만 16세까지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 교육 단체들은 “교육 정책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직접 교육감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야당은 과거에 비해 보수색이 짙어진 청소년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하다. 과연 지금의 고등학생들은 17년 전의 나와는 달리 뚜렷한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을까.
학생에게까지 정치적 신념을 요구하는 나라가 지구상 어딘가에 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에 있어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일부라는 것이다.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민주화를 쟁취한 나라답게 정치에 대한 관심은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 소양으로 취급된다. 집안 저녁 식사 자리나 학교 교실에서도 정치 논평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친척들이 오랜만에 모이는 명절날에는 가가호호 ‘미니 100분 토론’이 이어진다. 소설가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를 오마주하자면,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정치 권하는 사회’다.
정치 권하는 사회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하는지는 의문이다. 어느 나라보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국민이지만, 정작 그들이 지켜보는 정치권에서 민주주의의 이상(理想)인 대화와 타협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야는 점점 세를 불리는 강경 지지층에만 의존하고 있다. 선거의 기본인 공천 절차나 원칙이 잘 지켜지는지도 수상쩍다. 여론조사를 조작했다거나, 지지자들을 모아 놓고 현금을 살포했다거나,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유력 후보를 임의로 탈락시켰다는 등 각종 의혹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판국이다.
해묵은 정치 혐오를 다시 들먹이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가 우리 삶에 있어 그렇게까지 중요한 문제인지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가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인들의 선택이 우리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다. 현실을 외면한 부동산 정책, 무모하게 밀어붙인 의대 정원 확대, 느닷없이 선포된 비상 계엄 따위다. 우리 국민은 그럴 때마다 투표를 통해 슬기롭게 대응해 왔다고 생각한다. 이 이상으로 집안에서, 학교에서, 각종 모임에서 구태여 정치가 일상을 기웃거려야 할 필요가 있을까.
봄비가 내리는 목요일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비가 그치고 나면 만개했던 벚꽃은 다 지겠지만, 날씨는 포근해지고 봄이 훌쩍 다가올 것이다. 지난 설 명절을 앞두고 즐거운 명절을 보내기 위한 방법으로 “정치 얘기는 피하는 게 좋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봄날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