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 교수/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무명 시인은 월급을 받으면 서점으로 가 외상값부터 갚았다. 그 외상값을 갚고 나오는 길, 다시 외상으로 책을 샀다. 저녁 먹을 때면 그 책의 내용을 어린 딸에게 신이 나서 말해줬다. 서울대 학부대학 나민애(46) 교수가 기억하는 아버지 나태주(80) 시인의 모습이다. “자세히 보아야/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고 노래한 그 ‘풀꽃’ 시인이다.

나 교수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재래식 화장실을 써야 하는 주택에서 살았다. 외풍 심하고 비가 오면 쿰쿰한 곰팡이 냄새 나는 집이었다. 아버지가 모는 승용차는 타본 적 없다. 그 시절에도 아파트는 물론이고 타일 깔린 현대식 욕실, 고급 승용차도 있었다.

지난달 인터뷰로 만난 나 교수는 “가난이 원망스럽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와 주고받은 서신을 묶은 책 ‘나만 아는 풀꽃향기’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그건 ‘우리’의 것이었으니까요. 아버지가 나 대신 가난을 다 막아 줬으니까요.”

비유가 아니다. 외풍이 센 집에서 자라며 나 교수는 한 번도 추워서 깬 적이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끼어서 잔 덕분이다. 딸의 발이 차가워지면 아버지는 자신의 무릎 아래 딸의 발을 끼우고 이불로 감쌌다. 그야말로 슬하(膝下). 나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가난하지만 1급수에 사는 열목어’, 요즘 MZ식 표현대로 쓰자면 ‘정서적 금수저’다. 가난이 좋지는 않았지만 추워서 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인의 딸은 어느덧 서울대생의 글쓰기 선생이 돼 13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부대학은 신입생에게 기초 교양을 교육하고 전공 탐색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나 교수 수업은 강의 평가 1위를 할 만큼 인기가 있다. 학생들은 이런 강의 후기를 남겼다. ‘내 인생의 선생님’ ‘서울대에 진학한 것이 자랑스럽고 뿌듯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나민애 선생님을 만난 것’….

지난 주말, 나 교수 인터뷰를 신문에 싣고 ‘결국 훌륭한 시인의 딸이 좋은 글쓰기 선생이 되는 것 아니냐’는 독자의 반응을 접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유전의 영역으로 따지자면 나는 시인의 딸이 물려받은 것 중 으뜸은 ‘시인의 사랑’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삶이 감옥 같은 순간은 온다. 서울대를 나와 교수가 된 사람도 그렇다. 나 교수는 “때론 반짝이고 싶은 마음이 감옥을 만든다”고 했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반짝여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다. 그럴 때 나 교수에게는 ‘아버지와 보낸 시간’이 찾아온다고 했다. 아버지는 저 멀리 고향 집에 계시는데, 서울 사는 딸의 추운 발 옆에 아버지의 따뜻한 손이 왔다 간다. 저녁 밥상에서 어릴 적 아버지가 읽어주던 시가 말을 건다. 다시 잘 살아보자고.

우리 삶이 냉랭한 감옥이 될 때 그 문을 여는 열쇠는 뭘까. 1등 성적표도, 고급 외제차도 아닐 것이다. 저마다 가지고 있을 ‘슬하의 시간’,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사랑받은 바로 그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