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개막을 약 일주일 앞둔 카타르 도하 훈련장. 한국 대표팀의 분위기는 가끔 종교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엄숙해진다. 선수들의 집중력이 날카로워지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그들 입에서 나오는 단어가 비장미를 더한다. 약 2주일 전 눈 주변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는데도 카타르로 날아온 주장 손흥민은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또다시 다치는 위험쯤은 충분히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주전 수비수 김민재는 “헌신할 준비를 마쳤다”고 했다. “후회하지 않겠다” “4년을 바쳤다” 등 다른 선수들도 이를 악물었다.

문득 8년 전 브라질 월드컵이 떠올랐다. 당시 홍명보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도 마음 깊이 결의를 다졌다. 주전 수비 미드필더 한국영은 “부모님 생각도 안 난다. 월드컵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리고 실제로 홍정호는 다친 발목을, 기성용은 뼈가 조각난 무릎을 부여잡는 등 전부 내일이 없이 뛰었다. 하지만 열정만으로 돌파하기에 세계의 벽은 높았다. 한국은 1무2패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그 뒤 홍명보호는 비난과 비판이 뒤섞인 말들로 난자당했다. 조별리그 탈락을 확정하고 현지 식당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는데, 마침 식당 직원이 선수단을 향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영상으로 찍혀 인터넷에 퍼져 나갔다. 무슨 자격으로 그러느냐며, 욕설과 함께 선수단을 향한 인신공격이 난무했다. 급기야 홍명보 감독이 직접 “어린 선수들이 패배를 너무 슬퍼해 위로해 주고 싶었다”고 변명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들이 귀국해 인천공항에 나타났을 땐 발밑에 엿이 쏟아졌다. 22세의 손흥민은 ‘이 엿을 먹어야 하느냐’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4년 뒤도 다르지 않았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의 최고참 이용은 이마가 7㎝가량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도 일주일 뒤 바로 경기에 나섰다. 주장 기성용은 힘을 끝까지 짜낸 끝에 2차전에서 종아리를 다쳐 대회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세계 최강팀 독일을 2대0으로 잡는 ‘유종의 미’를 거두긴 했지만, 역시 1승 2패로 조기 탈락했다. 신태용 당시 대표팀 감독은 적절한 전술을 펼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신변에 위협이 되는 험한 말을 몇 달 내내 들었다. 귀국한 선수들 앞으로는 계란이 날아들었다.

축구 대표팀에 유독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 건 지난 1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취재하러 가서였다. 아쉽게 순위권에 못 든 선수들은 ‘1등만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따뜻한 격려를 받았다.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경기장에 나서는지 알기에, 주제 넘게도 그런 응원이 고마웠다.

물론 지난 두 번의 월드컵 모두 비판의 여지가 있었다. 감독 선임과 선수 기용 등에서 잡음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표팀이 처한 환경에서 최대한의 역량으로 최선을 다한 것만은 틀림없었다. 오는 24일 월드컵 본선 첫 경기를 치르는 한국이 16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기를 바란다. 하지만 기대 이하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번에도 대표팀이 온 마음을 다해 뛸 것임은 분명하다. 이젠 우리 국민도 선수들에게 상처를 주는 비난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시민 의식이 많이 성숙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