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타고 출입처인 정부세종청사로 출근할 때마다 ‘17㎞’를 생각한다. 오송역부터 세종시까지 거리다. 역 바깥으로 빠져나온 사람들의 다음 행선지는 대개 버스정류장이다. 세종시로 진입하는 도로가 막히는 일은 거의 없어서 20분 남짓이면 도착하지만, 길에서 허비하는 이 시간이 무척 아깝게 느껴진다. 창밖 풍경도 딱히 볼 게 없다. 택시라도 타면 편도 2만원이 더 든다.

충북도에 따르면 올 상반기 KTX 오송역 이용객은 하루 평균 2만3544명이었다. 이 중 몇 명이 세종시로 향하는지 정확히 집계된 바 없으나, 오송읍 인구가 2만4000명이니 KTX 탑승객 상당수가 세종시를 목적지로 뒀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결국 ‘KTX 세종역’의 부재(不在)가 뜻하는 것은 하루 2만여 명이 왕복 출퇴근길 34㎞, 40분을 길에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17㎞’라는 애매한 거리가 서울 출퇴근을 어렵게 하기 위한 ‘허들’이란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서울 출퇴근을 어렵게 만들어 공무원과 그 가족이 세종에 정착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금요일 오후 오송에서 서울로 향하는 KTX와 SRT 열차 티켓이 일반실·특실 가릴 것 없이 전부 ‘매진’인 것을 보면, 17㎞가 가진 ‘묶어두기’ 효과는 크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자녀가 입시생인 국·과장급 공무원들은 가족은 서울에 두고 본인만 세종에서 지내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세종시의 도시 설계는 세계적 좌파 도시학자가 총괄했다. 데이비드 하비 뉴욕시립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세종시 모습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11월 ‘행정중심복합도시 도시개념 국제공모’ 당선작 중 하나인 스페인 건축가 안드레스 페레아 오르테가의 ‘1000개의 도시’(the city of the thousand cities)와 가장 닮았는데, 당시 국제 공모전 공동심사위원장이 하비 교수였다.

서울과의 접근성으로 대변되는 KTX 역과 17㎞ 격리된 세종시의 또 다른 특징은 ‘도심(都心)’이 없다는 것이다. 용이 꿈틀거리듯 찌그러진 원형으로 설계된 정부세종청사는 가운데가 비어 있다. 당시 정부는 이런 디자인에 대해 “사회적 특권과 차별이 없는 민주적 도시 구조” “도시 기능이 분산된 위계 없는 도시”라고 설명했다. 사람과 돈, 교통이 도심에 집중될 것을 우려해 아예 도심 자체를 없애버렸다는 뜻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앙리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 개념을 계승한 하비 교수의 도시학 지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도시화의 부정적 면을 ‘도심 없애기’로 풀어낸 것이다.

도시 설계에는 분명 ‘철학’이 필요하지만, 이것이 ‘이념’과 연결되면 세종시 같은 곤란한 일이 생긴다. 정부가 강조하는 탄소중립이란 점에서 생각해도 중형차 기준 1㎞ 운전에 이산화탄소가 192g 배출되는 것을 감안하면 오송역과 세종시의 거리 17㎞는 3.264㎏을 배출한다는 뜻이다. 왕복이면 6.5㎏의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정부세종청사가 행정 중심 도시로서 기능할 앞으로의 모든 시간 동안 이런 비용은 계속 발생하게 된다. ‘17㎞’는 정부가 특정 이념에 집착해 행정을 펼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숫자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