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자아를 가진 스포츠 선수를 발견하는 일은, 모래밭에서 다이아몬드를 캔 것 같은 희열을 준다. 많은 선수들이 페어 플레이 정신과 동료애를 추구하지만, 그 너머의 경지가 있다. “이렇게 하라”고 집단적 압력이 가해질 때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소신으로 반격하는 것. 경기장 밖까지 아우르는 시야와 담대한 심장을 가져야 실천할 이 어려운 일을 해내는 선수들을 최근 보았다.
먼저 안드레이 루블레프를 소개하겠다. 러시아 모스크바가 고향인 스물다섯 청년으로, 현재 남자 프로 테니스 세계 7위다. 그는 지난달 두바이 오픈 남자 단식 준결승을 이기고 중계 카메라에 “전쟁을 멈춰 주세요(No War Please)”라고 썼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이틀 됐던 때였다. 그는 기자회견에서도 “전쟁 앞에서 테니스 경기는 하나도 안 중요하다”면서 “제발 평화를 되찾기를 바란다”고 똑부러지게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침공 직전 열린 마르세유 오픈 남자 복식에선 우크라이나 선수와 짝을 이뤄 우승했다. 팬들은 루블레프의 행보에 박수를 치면서도 “이러다 푸틴이 독이 든 홍차를 배달시키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그의 소신은 한발 더 나아갔다. 이번 상대는 영국 윔블던. 영국은 러시아 재벌이 소유한 프로축구단 첼시의 자금줄을 단박에 묶어버리는 등 대러 제재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다. 6월 말 세계 최고 권위의 테니스 대회 윔블던이 런던에서 열리는데 영국의 스포츠 담당 장관이 엄포를 놨다. “윔블던에 참가하고 싶은 러시아 선수는 푸틴을 반대한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라.”
러시아 선수 대부분이 숨죽이는데 루블레프만 다시 입을 열었다. “정치와 스포츠는 구분돼야 한다는 원칙이 있지만 현실에선 지켜지지 못합니다. 테니스가 좋은 선례를 남겼으면 합니다.” 이미 러시아 선수들이 국적 표시를 못하고 개인 자격으로만 투어를 뛰는 상황에서 영국은 출전 금지보다 더한 선택지를 강요했다. 루블레프는 맞섰다.
이제 아이쿠트 데미르를 소개할 차례다. 그는 터키 프로축구 2부리그 팀(에르주룸스포르)의 서른네 살 주장이다. 팀원 모두 ‘전쟁 반대(No War)’가 적힌 유니폼을 입기로 한 날 그는 혼자 착용을 거부했다. 팬들의 비난이 빗발치자 그가 말했다. “중동에서 매일 수천 명이 죽어나가는 참상은 외면했던 자들이 유럽의 비극엔 목소리를 낸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이 싫어서 그 옷을 안 입었다. 당연히 모든 전쟁에 반대한다.”
국제 스포츠계는 스포츠와 정치를 떼어놓은 올림픽 헌장(50조 2항)을 방패로 휘둘러왔다. 가령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든 선수나 관중에겐 즉각 징계를 줬다. 요즘은 러시아와 푸틴을 실컷 욕해도 별 제재가 없고, 우크라이나를 위해선 무엇이든 해도 되는 분위기다. 이러한 이중 잣대를 데미르가 지적했다.
세상의 변화는 바위 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계란들’이 만들어나간다. 루블레프와 데미르에게 박수를 보낸다. 하루빨리 우크라이나와 예멘과 미얀마와 다른 모든 곳의 포성이 멎기를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