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크 팀 인스타그램

도미니크 팀(27·오스트리아)의 엉덩이에 처음 사로잡힌 계기는 4년 전 프랑스오픈 준결승이다. 당시 팀은 흑백 줄무늬 티셔츠에 검정 반바지를 입었는데, 세렝게티 초원의 얼룩말처럼 흙바닥 위를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상대가 절정의 정교함을 뽐내며 4연속 메이저 대회 우승에 도전하던 세계 1위 노바크 조코비치(33·결국 그가 우승했다)였던 터라 팀이 세트스코어 0대3으로 졌다. 그래도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든 건 조코비치의 철벽 백핸드가 아니라 반바지를 터뜨릴듯한 팀의 엉덩이 근육이었다. 살면서 그렇게 압도적인 빵빵함은 처음 봤다. “와우! 이건 너무… 아름답잖아.”

도미니크 팀의 파워는 그의 엉덩이에서 나온다./ATP

성실한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애플 힙’을 가진다. 하체 단련은 모든 스포츠 종목의 기본이고, 스쿼트·런지 등의 동작을 수 없이 반복하다 보면 사과 두 알을 박아 넣은 엉덩이를 갖기 마련이다. 팀의 엉덩이는 한 차원 더 진화해 독으로 부풀어 오른 사과를 닮았다. 허리와 허벅지 사이를 지름 삼아 정확한 반구(半球) 모양을 뽐내는, 반구 부피 공식 ‘2/3πr³’이 인체에서 구현 가능함을 증명하는 표본이다.

테니스는 재빠른 발과 골프의 몸통 회전, 권투의 강펀치, 마라톤의 체력, 바둑의 시야를 한꺼번에 요구한다. 둔근(臀筋·gluteal muscles)은 가장 폭발적인 힘을 내는 근육으로 이 모든 행위의 시발점이다. 팀은 샷마다 지구 중력을 라켓에 다 빨아들일 기세로 임하고, 그의 탁월한 엉덩이 근육은 ‘힘(F)은 질량(m)과 가속도(a)의 곱’이라는 뉴턴의 운동 제2 법칙에 따라 공을 총알처럼 날려 보낸다. 네다섯 시간을 뛰어도 끄떡 없는 팀의 강철 체력도 그 둔근에서 나온다.

동료 선수들은 도미니크 팀을 두고 '금욕적(stoic)' '끈질긴(persistent)' '성실한(hard-working)' 등의 단어를 말한다. 로저 페더러는 "팀은 라파엘 나달 계열의 선수다. 한 포인트마다 최선을 다하는 파워 테니스를 치기 때문에 상대는 때론 벌칙 게임을 치르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인스타그램

팀의 엉덩이는 그가 한계를 깨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종이다. 21세기 남자 테니스는 1980년대생 페더러·나달·조코비치 트로이카의 집권기였고, 1990년대생 선수들은 이들에게 가로막혀 단 한 차례도 메이저 챔피언이 못 됐다. 팀은 페·나·조처럼 예리하거나 노련하진 않았지만 압도적 스태미너를 앞세워 해법을 찾아갔다. 동료 선수들 사이에서 “겨울에 통나무를 끌거나 언 강에서 수영을 한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하루 12시간 이상 땀 흘리며 경이적인 힘을 장착했고, 끝내 극기(克己)했다. 조코비치의 실격패로 1990년대생 최초 메이저 챔피언 배출이 확실해진 지난 9월 US오픈의 우승자가 그였다.

팀은 결승전에서 4시간 1분 사투 끝에 알렉산더 츠베레프(23·독일)를 세트스코어 3대2 (2-6 4-6 6-4 6-3 7-6<8-6>) 역전승으로 눌렀다. 당시 팀은 발 부상 후유증으로 움직임이 둔했고, 3차례 메이저 결승전(2018·2019 프랑스오픈, 2020 호주오픈)이 모두 준우승으로 그쳤던 트라우마를 극복 못 한듯 맥없이 경기해 두 세트를 먼저 헌납했다. 하지만 3세트 들어 스트로크 영점을 차츰 잡아가더니 기어이 5세트 타이브레이크 승부 끝에 역전했다. 승리의 여신 니케마저 탄복시켰을 엉덩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기적이다.

도미니크 팀은 그랜드슬램 대회 결승 4수(修)끝에 올해 US오픈에서 1990년대생 최초 메이저 챔피언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노바크 조코비치의 실격패와 결승 상대인 알렉산더 츠베레프의 자멸이 겹쳐져 어부지리 우승이라는 폄하도 있었지만, 그는 엉덩이 근육으로 행운과 기적을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 팀은 "이 날을 위해 테니스에 인생 전부를 바쳤다"고 활짝 웃었다. /USA투데이연합뉴스

팀은 올 시즌을 세계 3위로 마치면서 “평생 꿈이었던 메이저 대회 트로피를 마침내 들어 올려 가슴 벅차다. 테니스나 인생이나 오르막 내리막에 괘념치 않고 한 걸음 더 내디디려는 여정이고, 나는 이 길에 계속 충실할 것”이라고 했다. 지든 이기든 기복 없이 노력하는 자에겐 빵빵한 엉덩이가 주어지고, 엉덩이는 결코 거짓말하지 않는다. 노력의 가치에 회의가 치솟을 땐 팀의 테니스를 보자. 그의 엉덩이가 말해줄 것이다. 노력은 반드시 응답한다고. 그것이 꼭 오늘이 아닐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