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A에게 전화가 온 건 주말 아침이었다. 본지 사회면에 실린 대전 동물원의 탈출 늑대 ‘늑구’의 기사를 읽었다고 했다. 평소 과묵한 그의 목소리는 약간 높아져 있었다. AI로 늑대 사진을 합성한 게 진짜냐고 했다. 소방서가 가짜 사진에 속아 엉뚱한 도심을 수색했고, 그래서 소위 초기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이야기의 진위도 물었다. 1940년대생인 작가는 “끔찍한 일”이라며 “AI에 속아 소방관들이 헛고생했다는 거 아니냐”며 탄식했다.

15년 전 그와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전거로 달린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다 헛소리”라며 “길은 길바닥에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중요한 건 관념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구체적 삶이라는 게 작가의 지론이다. 이번 늑대 탈출 기사에는 자기 아이 걱정에 학교 앞에서 장사진을 친 초등생 학부모와 생포를 주장하는 동물 단체 사람들과의 대립도 포함돼 있다. 작가는 “빨리 죽여라와 죽이면 안 된다는 반박이야말로 지금 현시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야기 아니냐”면서 “신문 1면의 호르무즈 기사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라고 했다.

같은 날 오후 중동 전문가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동 정세 관련 긴급 점검 회의로 하루하루 정신없는 상황에서 ‘대전 늑대 탈출 보도’를 봤다고 한다. 호르무즈와 미사일 뉴스만 질릴 정도로 집중해서 보던 한 달이었고, 이날도 호르무즈에 신경을 집중하며 회의를 막 마쳤던 상황. 그런데 우연히 보게 된 늑대 탈출 뉴스가 이상하게 정겹고, 반갑고, 따뜻했다고 한다. 물론 사람들에게는 위협이니만큼 빨리 정리되기를 바라면서도, 옆자리 외교부 국장과 함께 한참 늑대 이야기에 몰입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평화 시대는 소소한 일상과 별것 아닌 소식에 놀라고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시대다. 반면 전쟁의 시대는 죽음이 일상이 되고 무감각해지는 시대다. 전쟁과 갈등의 소식이 잦아들고, 중동이든 어디든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뉴스에 다들 놀라고 반응하는 그런 시절이 이어져야 할 텐데.…”

우리 현대인은 AI로 무장해 똑똑해진 것 같지만, 사실은 다들 ‘경험 없는 전문가’에 가깝다. 호르무즈의 미사일 궤적은 줄줄 꿰는 이들이 정작 내 집 뒷산 늑대의 생생한 기척을 놓친 채 AI가 빚어낸 가짜 사진에 속아 길을 잃는다. 관념은 비대해졌지만 몸의 감각은 퇴화한 시대의 풍경이다

이번 늑대 사건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진짜를 회복하라’고 경고하는 것 같다. 화면 속 화려한 픽셀이 아니라, 늑대가 파헤친 차가운 흙의 감촉과 그 짐승을 추적하며 산속을 누비는 수색대원의 거친 숨소리 같은 구체적 현장 말이다. 우리는 거대 담론에 홀려 정작 내 주변의 작고 선명한 변화들은 놓치고 사는 것 아닐까. 작가 말마따나 길은 여전히 길바닥에 있다.

이솝 우화에서 ‘양치기 소년’은 사람들의 관심을 갈망하며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반복한다. AI 조작 사진을 만든 사람의 심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우화의 교훈을 우리는 알고 있다. 거짓말쟁이로 찍히면 소년이 진짜를 말할 때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 세상엔 가짜 뉴스, 가짜 사진이 넘쳐난다. ‘딸깍’ 한 번으로 만든 매끈한 가짜 사진에 속아 산속 진짜 늑대를 외면하는 세상. 이제 스마트폰보다 길바닥을 살펴보자. 이 칼럼을 쓰는 지금까지 ‘늑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늑구야, 이제 집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