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사했다. 월 2만원짜리 단지 헬스클럽에는 외제 기구가 가득하고, 주민들이 운동도 열심히 한다. 이 감탄할 만한 신축 아파트에는 저녁 8시마다 기계음 안내 방송이 나온다. “반려견 짖는 소리, 변기 물 내리는 소리, 발걸음 소리, 기침 소리는 모두 이웃의 평안을 해칠 수 있으니 자제하여 주시고….” ‘K 신축’ 주민들에게 ‘평안’이란 대체 어떤 건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티를 내지 말라. 처음 경험하는 세계다.

관리사무소에는 민원이 넘친다. “왜 아이가 낮에 거실에서 뛰나” “아랫집에서 생선을 굽는 냄새가 올라온다.” 불만에 어떻게든 대응하지 않으면 ‘관리소장 탄핵’ 소리가 나온다. 아파트 1가구는 ‘관리비’ 개념으로 대략 한 달에 10만원을 낸다. ‘하루 3300원’으로 관리인들을 종 부리듯 한다.

구조적 문제도 있다. 아파트 주거 비율이 높은데, 저렴한 벽식 구조로 지어 소음이 잘 전달된다는 것이다. 반만 맞는다. 나무로 짓는 미국식 아파트는 소리가 더 크게 울린다. 대부분 ‘남의 머리를 딛고, 남의 발 아래 사는 공동주택’의 대가라고 여긴다. 요즘은 매너도 좋아지고 소음 규제도 강해졌지만 “젊은 층이 많이 사는 신축에 소음 민원이 더 많다”는 전직 경비원의 증언이 있다. 위층, 아래층, 옆집을 비우지 않는 한, ‘3300원짜리 권력감’을 누리려는 이들은 점점 늘 것이다.

카카오택시, 배달의민족, 쿠팡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은 ‘권력감’을 아예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늦었다고 제발 빨리 좀 가달라고 해서 달렸더니 ‘난폭 운전’이라고 신고했더라.” “연무장 길이 막히니 20m만 걸어 옆 골목에서 타라고 했다가 신고당했다” “승객에게 ‘나빠요(1점)’ 한 번 받으면 ‘좋아요(5점)’ 열 개를 받아야 회복된다.” 택시 기사들 주장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새빨간 거짓말도 아니다. 카카오택시 앱은 택시 기사와 승객이 상호 평가하지만, 별점의 ‘가치’는 공평하지 않다. 기사는 평가가 나쁘면 호출 정지 같은 불이익을 받지만, ‘매너 없는 승객’이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희박하다. 매너와 상관없이 택시비만 많이 내면 ‘VIP’가 된다. 카카오택시는 6개월 결제금 기준으로 손님 등급을 매긴다. 미국 우버는 ‘진상 고객’을 기사가 알아서 피할 수 있다. 차가 안 잡히면 ‘내가 진상이라 그런가’ 하는 반성의 순간을 맞는다. 카카오택시는 깜깜이 배차다.

지난 2023년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유서를 남기고 사망하자, 경비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갑질 피해를 규탄하며 행진을 벌인 적도 있다. /뉴스1

‘배달의 민족’에서 김치찌개 같은 메뉴를 검색하면 별점순으로 식당이 나열된다. 대부분 맛 기준이지만, ‘서비스 하나 없다’고 별점 테러하는 소비자도 적잖다. 리뷰 인증하면 콜라나 샐러드 서비스 준다는 식의 마케팅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마진을 깎아가며 손님에게 조공을 바치고 별점을 구걸한다. ‘무조건 반품’이라는 쿠팡의 너그러움이 사실상 업체의 피눈물이라는 건 널리 알려졌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손님은 왕’이라는 환상을 팔며, 소비자에게는 ‘돈 내는 책임’ 외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정부와 국회는 중재 대신 실체없는 국민 눈높이를 법과 규정으로 만들어 ‘소비자’에게 표를 받는다. 환경부가 정한 아파트 소음 기준은 38~45dB로 세계에서 가장 깐깐한 수준이다. 조용한 도서관이 30~40dB이다. 건설사의 소음 방지 비용은 늘고 아파트 질도 좋아졌지만, 분쟁이 획기적으로 줄었다는 증표는 별로 없다. 소비자 권리라는 미명으로 포퓰리즘 입법과 아부 행정이 판친다.

아름답고 추하며, 향기와 악취를 동시에 풍기는 인간과 인간이 모여 공동체가 된다. 상대를 견디는 폭만큼 내 자유의 발치도 넓어진다. ‘별점 폭군’이 점령한 대한민국에서 공동체, 관용, 공존이란 이젠 그저 ‘가상 현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