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모든 비행은 ‘처음’이었다. 마하 1.8, 고도 5만 피트, 공대공 미사일 발사, 공중 급유 등 전투 상황을 가정한 극한의 항공 실험. 때로 목숨을 걸어야 했지만, 돌파의 순간은 맹렬하고 경이로웠다.
세계 전투기 시장 판도를 흔들고 있는 대한민국 전투기 KF-21은 그 헌신의 산물이다. 지상 시험 990회, 비행 시험 1650회를 무사고로 완수한 시험비행 조종사들의 똘끼와 담력이 없었다면 항덕들이 ‘게임 체인저’라 추앙하는 한국산 4.5세대 전투기는 탄생할 수 없었다.
경남 사천 제281 시험비행대대에서 두 주역을 만났다. 안준현은 2022년 7월 KF-21 시제기의 첫 비행을 성공시킨 조종사. 전승현은 KF-21 최다 비행 조종사로 전투기 개발 전 과정에 참여했다. ‘공군 최고의 극한 보직’으로 불리지만, “선을 넘는 희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아찔한 쾌감이 모든 두려움을 압도했다”고 말했다.
◇ 美 F-35보다 빠른 국산 전투기
-지난 25일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KF-21 1호(양산기) 출고식이 열렸다.
안준현(이하 안): “우리 영공을 우리가 만든 전투기로 지킬 수 있게 된 날이라 가슴이 벅찼다.”
전승현(이하 전): “6·25때 전투기 한 대 없이 싸워야 했던 우리가 세계 8번째로 4.5세대 초음속 전투기를 개발한 나라가 됐다.”
-전 중령은 출고식때 KF-21을 직접 몰고 등장하더라.
전: “4년간 함께 고생한 시험비행 조종사들을 대표해 조종석에 앉았다. 실수할까봐 엄청 떨었다(웃음).”
-시제기 1호의 첫비행을 성공시켰던 안 중령의 감회가 남다르겠다.
안: “KF-21을 처음 봤을 때 과연 날 수 있을까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국산 전투기에 대한 모든 우려를 불식시키고 마침내 완성시킨 엔지니어들과 후배 조종사들이 자랑스럽다.”
-양산기는 일단 1대만 완성된 건가?
전: “컨베이어 벨트에서 기계가 조립하는 자동차와 달리, 전투기는 악기를 만들 듯 한땀한땀 사람 손으로 만든다. 2호, 3호, 4호가 순차로 나올 것이다.”
-어떤 전투기이길래 이토록 열광하나?
전: “KF-21은 시속 2200km, 최대항속거리 2900km에 7.7t 무장을 탑재한 다목적 전투기다. 속도는 미국 전투기 F35A보다 빠르고, 무장 능력은 4.5세대 동급 전투기들 중 최강이다. 일반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저피탐 기능이 뛰어나 스텔스기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산 전투기 개발을 선언했지만 박근혜 대통령 때인 2015년에 와서야 개발에 착수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던데.
안: “개발 기간이 길고 천문학적 예산이 드는 데다 실패 확률도 컸기 때문이다. 사업 타당성 분석에만 10년이 걸렸다.”
-‘아우디 살 돈으로 왜 쏘나타를 만드느냐’는 비판이 있었다.
전: “선진국의 명품 전투기를 사오면 당장 전력화해 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유지 비용이 막대하다. 전투기에 결함이 생겨도 우리 마음대로 고칠 수 없다. 부품 교체, 무기 장착, 수리 여부까지 판매국 승인을 받아야 하고 그에 따른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개발에 착수했지만, 미국이 전투기 핵심 기술 이전을 거부해 좌초 위기에 빠졌었다.
안: “위기가 오히려 동력이 됐다.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경전투기 FA-50을 개발하며 축적한 기술을 토대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엔지니어들이 최첨단 AESA 레이더를 비롯해 주요 항전 장비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전: “KF-21 개발은 단지 하나의 전투기 기종을 확보한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 군의 필요에 따라 AI 기술, 저피탐 능력 강화, 항전 체계 개량 등 5~6세대 전투기로 진화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 온몸의 실핏줄이 터졌다
-첫비행이 두렵지 않았나?
안: “KAI 엔지니어들의 능력을 믿었다(웃음).”
-이륙 직전 라디오가 먹통이 됐다던데.
안: “세 번이나 실패하자 이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을 엔지니어들, 공군 동료들 얼굴이 떠오르더라. 한번 더 실패하면 비행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데 마지막 순간 라디오가 작동됐다. 마침내 이륙에 성공하자 정비 조장님이 펑펑 울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KF-21에 대한 첫인상은?
안: “3세대 전투기가 티코라면 KF-21은 제네시스!(웃음). 인간공학적으로 설계된 조종석, 직관적인 다기능 시현 체계(MFD)를 보며 엔지니어들이 조종사들을 얼마나 배려했는지가 느껴졌다.”
-극한으로 몰아가는 시험 비행이 많았다더라.
전: “2km 이상 급강하한 뒤 수초만에 기체가 정상 회복되는지 체크하고, 1만 미터 상공에서 엔진을 끈 뒤 전투기를 통제 불능 상태로 유도하는 비행을 한다. 기체가 중력을 얼마나 견디는지 확인하는 급선회 시험 비행도 고난도다. 순간 조종사에게 주어지는 하중이 최대 9G. 이는 조종사가 자신의 체중 9배에 달하는 중력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위험한 순간은 없었나?
전: “지구 표면에서 15km떨어진 5만 피트 상공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대낮인데도 주위가 캄캄해서 공포감이 엄습했다. 가장 까다로웠던 임무는 공중 급유다. 급유기와 최적정 거리를 설정하기 위해 다가가다 충돌할 뻔한 적이 있다.”
안: “한 후배 조종사는 지리산 상공에서 고받음각 비행 시험을 수행하던 중 3만5000 피트 상공에서 4천 피트까지 낙하했다. 지상 통제관이 비상 탈출하라고 했지만 끝까지 항공기를 버리지 않고 시도한 끝에 자세 회복에 성공했다.”
-조종사의 몸도 혹사 당할 것 같다.
안: “중력과 속도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팔, 옆구리, 허벅지 등 온몸의 실핏줄이 터지고 피멍이 든다.”
전: “중력에 눌려 키가 2cm 줄어든 것 같다(웃음). 급회전 할 땐 목으로 버텨야 해서 F1 선수들 다음으로 우리 목이 두꺼울 것이다.”
◇ 선을 넘어, 경계를 넘어
-공군 최고의 ‘극한 보직’이라는 테스트 파일럿에 왜 지원했나?
안: “최신 항공기를 타고 싶어서(웃음). 주기종이 F-4E라 FA-50 같은 최신 항공기를 조종해보고 싶었다.”
전: “사관학교 2년 선배인 안 중령님 권유로 시험비행 조종사가 됐다. 선을 넘는 도전이 좋았다. 전투대대 교본엔 ‘이 영역에서만 비행하라’고 선을 긋는데, 우리는 그 경계를 넘나들면서 항공 공학에 대한 지식을 깊고 넓게 배웠다.”
-누구나 시험비행 조종사가 될 수 있나?
전: “750시간 이상 비행 시간과 4대의 전투기 편대를 지휘할 수 있는 리더여야 한다.”
-가족들은 걱정이 많겠다.
전: “다들 의연한 척한다, 하하!”
안: “첫 비행 전날 아내와 사소한 일로 다퉜는데, 비행장으로 전화가 왔더라. ‘잘하고 와~.’”
-징크스가 있다면?
안: “징크스는 아니고 일종의 의식인데, 탑승 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렸다가 장구(裝具)를 차려입기 직전 화장실에 간다.”
전: “공중 급유 땐 3시간 이상 하늘에 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비행 4~5시간 전부터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 이토록 작고 아름다운 조국
-그러고 보니 안 중령은 KF-21의 시작을, 전 중령은 그 마무리를 담당했다.
안·전: “우리 공군사, 항공사의 역사적 순간에 서게 돼 감사할 뿐이다.”
-전 중령은 KF-21 개발 전 과정에 참여했더라.
전: “운이 좋았다(웃음).”
안: “전 중령은 엔지니어들이 가장 좋아하는 조종사다. 비행 후 피드백, 데이터 분석은 물론 많은 질문을 쏟아내서! 조종사의 정확한 평가, 엔지니어와의 적극적인 소통이 KF-21을 단기간에 개발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고 생각한다.”
-전투기 심장으로 불리는 ‘엔진’은 아직 미국 GE의 F414를 쓴다던데.
안: “한화의 기술도 일부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자동차 엔진, 누리호 발사체 엔진을 독자 개밸해냈듯이 항공 엔진의 국산화도 10년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KF-21의 2 단계 시험비행도 시작됐다고 들었다.
전: “공대지 화력을 높이는 ‘추가무장 시험사업’이다. 2028년 말까지 유도폭탄유닛(GBU)-31, GBU-56 등 합동정밀직격탄(JDAM) 장착과 발사 시험을 한다. 한국형 중거리 유도탄 ‘KGGB’도 실린다. 최종 무장은 국방과학연구소가 개발 중인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 ‘천룡’이다. 북한 수뇌부 은신처까지 타격할 수 있는 1360kg급 벙커버스터 미사일이다.”
-6·25 전쟁 영웅 김두만 장군이 KF-21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더라.
전: “6·25때 이런 전투기가 있었다면 통일할 수 있었을 거라고, 후배 조종사들이 부럽다고 하셨다.”
-2년 전 F-4팬텀 퇴역식에 KF-21이 함께 날았다.
전: “55년간 대한민국 영공을 지켜온 팬텀 4기를 호위하며 고별 비행했다. 박정희 대통령때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방위성금으로 구매한 F-4 팬텀기에 고등학생들을 태워 국토순례비행을 한 적이 있는데, 이를 재현한 세리머니였다. 한국 공군의 세대 교체를 상징하는 것이라 뭉클했다.”
-요즘 군인들은 애국심이 부족하다는 비판에 대해.
전: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애초 군인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안: “아버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모두 해군이셨다. 표현 방식이 다를 뿐 저희 세대 애국심도 화산처럼 뜨겁다(웃음).”
-하늘에서 조국의 산하를 내려다볼 때 무슨 생각하나?
안: “임무 수행하느라 산하를 내려다볼 겨를이 없었다(웃음).”
전: “아주 높이 올라가면 동해·서해·남해가 한눈에 보인다. 이토록 작고 이토록 아름다운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전율을 느낄 때가 있다.”
☞안준현·전승현 중령
안준현: 1982년 경남 진해 출생. 창신고,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F―4E를 주기종으로, 총 1953시간 비행했다. 2016년 시험비행조종사가 됐으며, 공군 52전대 제281 시험비행대대장을 거쳐 합동참모본부에서 대외정책 분석을 담당하고 있다. 2022년 7월 KF―21 시제기 1호를 최초 비행했다.
전승현: 1985년 경남 남해 출생. 남해고,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KF―16을 주기종으로 제19전투비행단, 제3훈련비행단, 제215비행교육대대 교관을 거쳐, 현재 제281시험비행대대장이다. KF―21 최다 비행시험 조종사. 총 비행시간은 2200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