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김영재·Midjourney

“‘한국의 포지타노’가 없어지는 게 안타깝다. 왜 저기 흉측한 콘크리트 덩어리 아파트를 세우나.”

한남동 산동네를 보면서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절벽 동네를 떠올리는 이들이 있다. 여유 있는 삶에 외국도 많이 다녀본 이들이다. 낮에 그 동네를 걸어봤는지 궁금하다. 포지타노는 석조 건물에 테라코타 기와를 썼다. 저렴한 재료로 집을 엮어 수리 안 하고 산 건물과는 비교가 안 된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에 지은 우리 건축물은 몇 대를 이어 살기에 어려운 곳이 많다. 그런 이들도 ‘아파트 좀 그만 짓자’고 하지, 지어놓은 아파트를 때려 부수자는 말은 하지 않는다.

전현희 민주당 의원이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지며 “동대문 일대의 패션 의류 상가들과 단절돼 유령 도시처럼 상권을 죽게 만든 전시성 행정의 대표 사례인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해체하고 다목적 실내 경기장을 짓겠다”고 했다. 건물이 상권을 죽게 만들었다? DDP 없는 용산전자상가는 왜 쇠락했나.

'곡선의 여왕'으로 불리는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게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전경./서울시

중동 사막의 모래 언덕을 닮은 DDP 건물은 유선형 건물이라 공간 효율이 떨어지고, 창문이 없어 공기 순환도 덜 된다. 하지만 그런 ‘낭비’를 감수할 만하다. DDP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강북 유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DDP는 오세훈이 잉태하고, 박원순이 출산했다.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투표로 중도 사퇴한 후, 시장에 당선된 박원순은 좌파 진영에서 ‘오세훈의 DDP 철회’ 요구를 받았다. 그러지 않았다. 잘한 일이다. 그러나 ‘양육 철학’은 달라졌다. 오세훈은 ‘세계적 디자인·패션 허브’를 꿈꿨지만, 박원순은 시민 접근성과 공공성을 강조했다.

결국 DDP는 세계적 디자인 허브도, 완전한 시민 광장도 되지 못했다. 예산에 맞추느라 ‘공간 대여업’으로 만족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오세훈 시장 컴백 후에도 획기적으로 달라지진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에 예산을 넣느니 다른 가시적 성과에 눈을 돌렸으리라 짐작한다.

'서울 걷자 페스티벌'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로 7017을 걷고 있다. /남강호기자

도시 디자인 전문가들은 “정작 해체할 것은 서울로7017”이라고 말한다. 박원순 시장의 ‘서울 재생’ 프로그램 중 실패 사례로 창신동과 서울로7017을 꼽는 이들이 적잖다. 창신동은 대대적 인프라 혁신 없이 ‘벽화’만으로는 주거의 질이 개선되기 어렵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대신 공중 보행로로 탈바꿈시킨 ‘서울로7017’도 마찬가지다. 콘크리트 보행로에 화분 수백 개를 갖다 뒀지만 ‘뉴욕의 명소 하이라인의 짝퉁의 짝퉁’이라고 해도 반박하기 어렵다. 그래도 공개적으로 ‘철거’라는 단어를 말하는 이는 별로 없다. 오세훈 시장도 지난 2023년 “전임 시장 흔적 지우기라는 정치적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건물을 부수는 것을 ‘정치적 쾌감’으로 승화시킨 건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치욕의 역사를 보존하며 “잊지 말자” 다짐할 건가, 눈앞에서 제거해 치워 버릴 건가. 우리는 단연 후자 쪽이다. 일제 총독부 건물 존치 여부는 오랜 논란거리였지만, 김영삼 대통령은 여기에 ‘역사 바로 세우기’ 프레임을 붙였다. 1926년 완공한 이 건물은 조선총독부가 19년, 이승만·박정희 정부의 중앙청으로 약 40년, 이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10년을 썼다. 일제 역사와 더불어 우리 건국의 행정 공간도 함께 사라졌지만, 그런 걸 지적하면 ‘친일파’라는 비난뿐이었다. ‘정치인 김영삼’은 이승만·박정희의 기억도 함께 버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기자는 생각한다.

대형 건축물은 ‘독재자’의 욕망이라는데, 우리는 거기에 더해 파괴의 욕망을 ‘정치적 퍼포먼스’로 치환한다. 값비싼 쇼를 또 봐야 하는 건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믿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