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쌀값 급등 반년, ‘먹사니즘’은 어디로 갔나
설을 앞두고 쌀값이 너무 올랐다. 지난해보다 16% 정도 비싸져 20㎏들이가 평균 6만원이 넘는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쌀값은 지난해 8월 이후 매달 두 자릿수 이상 상승해 왔다. 역대 최고 수준인 가격이 조만간 내려가길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듬해 쌀값을 결정하는 수확기 산지 가격이 지난해 가마(80㎏)당 평균 23만원을 넘어 역대 최고를 찍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은행의 생산자물가를 토대로 ‘10월 쌀 도매가가 28% 급등했다’고 기사를 썼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일시적 문제이며 쌀 수확이 시작되면 곧 가격이 내려갈 전망”이란 요지의 설명이었다. 믿고 기사에 반영했건만, 결과는 반대였다.
쌀값이 비싸진 이유에 대한 정부의 설명은 간단하다. 공급이 예상보다 부족했기 때문이라 한다. 오랜 기간 쌀이 남아돈다고 걱정하다가 갑자기 쌀이 모자라다니 납득이 안 된다. 정부는 역시 허둥지둥하는 모습이다. 가격이 이미 오르던 지난해 10월 ‘사전 수요 예측’ 결과 곧 쌀값이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며 쌀 10만t을 사서 시장으로부터 격리하겠다고 발표하더니, 3개월 만에 쌀값이 올라 문제라면서 이를 취소했다. 늦은 데다 꼬였다. 정부의 쌀 매입을 기대했다 무산된 농민들은 ‘취소를 취소하라’며 반발하고 있다. 밥상 물가 부담이 커진 소비자에게도 그다지 도움은 안 된다. 쌀을 추가로 푼다는 얘기가 아니라 격리하려던 쌀을 그냥 둔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칼럼] 안보와 자존(自尊)의 갈림길
요즘 미국 언론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메뉴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다보스 연설이다. 카니 총리는 이 연설에서 이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미국 중심의 강대국 질서가 ‘균열(rupture)’됐다며 중견 국가 및 소규모 국가들이 단결해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 나가자고 호소했다. 미·중·러 등 강대국 정치를 대체하는 중소 국가 시대를 열자는 것이다. 카니가 말하는 중견 국가 중에는 한국이 당연히 중요한 비중으로 언급되고 있다.
미국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또 다른 관점은 ‘중국의 시대’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와 그린란드 문제 등 미주(美洲)의 보전(保全)과 확보에 열중하며 관세와 무역 제재로 동맹·우호 국가들을 압박해 이들이 중국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마가(MAGA·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동맹국을 죽 쑤어서 중국의 배를 불리고 있는 격이라는 것이다.
[이기호의 유머란 무엇인가] 한국이 발명한 ‘부장님 유머’... 웃다가 왜 짠해졌나
예전에 한 신문사 문화부 회식 자리에 우연히 동석한 적이 있었다. 신작 소설 인터뷰를 하다가 이어진 술자리였는데(그랬다. 낮술이었다), 데스크와 기자 두 명도 연이어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주 기이한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인터뷰이는 분명 나였는데, 점점 부장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주로 부장이 말을 하고, 나머지 기자들과 나는 가만히 듣는 상황. 기자들은 부장이 무슨 말만 하면 손뼉까지 치며 웃어댔는데, 그 말이 좀 그랬다(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뭐 이런 내용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아. 대부분 집에 누워 있어” 등등). 아니, 저 말이 그렇게 웃기나, 생각했지만... 어느새 다른 기자들 사이에서 함께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내가 이렇게 마음이 너른 사람이다). 술자리가 끝나고 부장도 떠난 후, 내 인터뷰를 담당했던 기자가 잔뜩 취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작가님, 오늘 인터뷰 부족한 내용은 이메일로 마저 진행할게요.” 아니, 뭘 한 게 있어야 보강을 하든 말든 하지? 나는 기자에게 진지한(취할 때마다 나는 진지해진다) 목소리로 물었다. “기자님, 정말 부장님이 웃겨요?” 그러자 기자는 약간 정색한(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다가 툭, 내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아이 참, 작가님도. 뭘 그런 걸 묻고 그래요?” 그러곤 손 인사를 하고 지하철역 방향으로 사라졌다.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619] 고삐 풀린 말 위의 열정
고대로부터 고삐 풀린 말은 난폭한 생명력, 거친 욕망과 열정을 상징했다. 반대로 고삐에 순종하며 절도 있게 움직이는 말은 이성과 절제, 고귀한 믿음의 상징이었다. 중세까지 욕망과 열정이란 죄악의 근원일 뿐이었다. 하지만 인문학이 성장하기 시작한 이 시기, 즉 르네상스에서는 인간을 움직이는 자율적이고도 근원적인 힘으로 이해됐다. 그 때문인지 두려움 없는 눈빛으로, 말등에 올라타 내달리는 남자의 모습에는 스스로의 내면을 이해하고 포용한 채 속도를 감당하려는 자신감이 보인다. 올해는 말의 해다. 과연 고삐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가 자기만의 열정에 올라타 흔들림 없이 달려보기를 기대한다.
[류호정의 톱밥 먹는 중입니다] [15] 일자리가 사라질 때 선진국의 대화법
AI가 왔다. AI는 일을 쉽게 만든다. 동시에 일자리를 위협한다. 2025년 말부터 아마존은 AI 기반 체계로 전환을 시도했다. 그사이 3만명에 이르는 사람을 해고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AI발 해고’가 본격화한 셈이다. 충격적인 사건이라 말할 수 있을까? 글쎄, 사람들은 올 것이 왔다는 듯하다.
재난이다. AI 덕분에, 아니 때문에 산업 전환을 맞는 사람이 늘었다. 인류 편의를 위한 첨단 과학 기술은 고용을 흔든다. 고용이 동요하면 소비가, 소비가 동요하면 내 일감도 요동친다. 가구가 안 팔리면 다 무슨 소용인가. AI 풍파에도 안전하리라 여겼던 ‘목수’도 걱정하는 수밖에 없다.
예고된 재난이어야 한다. 최근 현대자동차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두고 화끈한 구호가 오갔다. 금속노조는 “노사 합의 없이 단 한 대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은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는 없다”고 했다. 100만 조합원을 가진 총연맹과, 5000만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했던 말들이다. 어쩌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