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킹 달러’를 흔드는 트럼프
190여 년 전 괴테가 쓴 ‘파우스트’ 2부는 나라 곳간이 빈 황제의 얘기로 시작한다. 파우스트에게 쾌락과 영혼을 바꾸자는 제안을 했던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황제에게 재정난을 벗어날 묘안을 준다. 아직 파내지지 않은, 땅속에 묻혀 있을 금·은을 담보로 ‘지폐’를 내라는 것이다. 황제는 “엄청난 사기”라고 하지만, 결국 악마의 꼬임에 종이 조각에 1000크로네라고 쓰고 서명한다. 지폐를 뿌려 황제는 군대에 밀렸던 급료를 주고 빚을 갚는 등 재정 위기에서 벗어난다. 괴테는 “반쯤 죽어 곰팡내 나던 도시에, 모든 것이 살아나 왁자지껄 즐기며 바글거린다”고 썼다.
스위스 경제학자 한스 반스방거는 파우스트의 ‘지폐 장면’이 가치 없는 종이를 화폐로 바꾸는 ‘금융 연금술’을 보여준다며, 현대 경제가 이런 연금술적 속성을 계승한다고 했다. 금을 캐서 화폐로 쓰는 대신 금이 있다는 허구의 믿음, 즉 신용에 기반해 경제가 움직이고 있다. 위험성도 있다. 2010년대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였던 옌스 바이트만은 파우스트의 지폐 장면을 언급하며 중앙은행이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돈을 찍기 시작하면 파우스트의 황제처럼 초기엔 달콤한 호황을 누리지만 결국 통화 가치 하락과 사회적 혼란이 온다고 경고했다.
[김창균 칼럼] “내란, 증시 잡았는데 부동산쯤…” 자신감 또는 초조함
스펙만 따지자면 상극에 가까운데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묘하게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줄줄이 사법 리스크를 달고 있고, 유치장 담장 위를 아슬아슬 걷는 곡예 끝에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퇴임 후로 재판을 미뤄 놓았다. 평행선은 거기까지일 줄 알았다. 머릿속 의제는 스펙트럼 양쪽 끝이니 대통령 취임 후 업무 스타일은 상반될 것으로 짐작했다.
“대통령은 주말 동안 비판 언론을 향해 분노의 폭풍 트윗을 쏟아냈다. 자신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는데 언론은 깎아 내릴 구실만 찾는다고 불평했다.” 트럼프 1기 때인 2020년 4월, 미국 언론이 전한 대통령 모습이다.
“대통령은 지난 주말 7건의 게시물을 X(옛 트위터)에 올렸다. 새벽과 이른 아침을 가리지 않고 직접 메시지를 내는 빈도가 눈에 띄게 늘었다. 정부 성과에 대한 자신감을 강조하면서 언론이 억지로 비판하는 ‘억까’를 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며칠 전 이재명 대통령 관련 보도다. 한국의 진보 대통령과 미국의 보수 대통령의 닮은꼴은 취임 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특파원 리포트] 한심한 K스타트업 지원책
미국 샌프란시스코 어느 호텔에서 한 기관이 주관한 K스타트업 데모데이 행사에 갔다. 한국 스타트업 10여 곳이 부스를 차리고 국내외 투자자와 릴레이 미팅을 하고 있었다. K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열기를 취재하고 싶어 투자자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었다. 그 대표의 답변은 솔직했지만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내수 중심이라 미국 진출 생각은 없다. 지원을 받은 기관에서 비용을 대준다고 하니 왔을 뿐이다.” 미국 시장에 관심도 없는 기업을 데리고 행사를 연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이미 K스타트업 붐이다. 잘해서라기보다는 한국에서 이곳에 관심이 많아서다. 내수 시장은 쪼그라들었고, 창업가라면 미국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이 필수가 됐다. 스타트업 지원 기관이 이곳에 본부를 차리고, 정부도 돈을 많이 쓴다. 올해 정부가 창업 지원에 쓰는 돈은 전년 대비 5.2% 증가한 총 3조4645억원.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열리는 K스타트업 행사를 보면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의문이 든다.
[박찬용의 물건만담] ‘라스트 랩 벨’이 증명하는 AI 시대 수공업의 생존법
인공지능(AI) 시대에 대한 우려가 온갖 곳에서 화제다. 모든 사람이 미묘한 존재론적 위기를 느끼는 가운데 개개인의 일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보통 사람인 우리의 삶과 일이 지속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내가 꼽는 물증 중 하나가 내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막할 동계 올림픽에 나타난다. 그 물건의 이름은 ‘라스트 랩 벨(Last Lap Bell)’이다.
[이응준의 과거에서 보내는 엽서] [52] 신은 위대한가
나는 2006년 2월 5일 튀르키예 트라브존에 있는 산타 마리아 가톨릭 교회 앞에 서 있다. 저 안에서 오늘, 기도 중이던 안드레아 산토로 신부가 16세 소년의 총격에 살해당했다. 신부의 주검 앞에서 소년은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쳤다. 9·11 테러가 불과 5년 전쯤이었다는 점은 시대의 공기를 반영한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2005년 9월 30일 덴마크 일간지 ‘윌란스 포스텐’은 ‘이슬람에 대한 공포와 자기 검열’을 주제로 만평가 12명에게 각각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그리게 했다. 그중 두 개만 설명하자면, 무함마드가 도화선에 불이 붙은 폭탄 모양의 터번을 쓰고 있고 거기에는 이슬람의 신앙고백 문구인 ‘샤하다(알라 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라는 뜻)’가 적혀 있다. 다른 만평에서는 무함마드가 방금 천국에 도착한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들을 향해 손사래를 치며 “그만해! 처녀가 다 떨어졌어!”라고 외친다. 자폭 테러를 하면 천국에서 72명의 처녀를 보상으로 받는다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믿음을 조롱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