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숨죽여 있는 일본 내 혐한
10년 전 도쿄의 한 서점에서 산 ‘종한론(終韓論)’이란 책의 저자는 “사실 일본에게 한국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라고 썼다. 이유에 대해서는 “일본이 한국의 주권을 빼앗고 식민 지배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본래 한국은 1000년 넘게 다른 나라의 속국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일본은 혐한(嫌韓)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뇌피셜(근거 없는 주장)로 한국 폄훼하는 글만 써도 몇천 부가 팔렸다. 운이 좋으면 베스트셀러도 됐다.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이란 혐한 단체의 회원들은 떼를 지어 한국 식당에 몰려가 “꺼지라”며 소리쳤다. 헤이트 스피치(혐오 표현)였고 영업 방해였지만 일본 경찰은 나서지 않았다.
[정수윤의 길을 걸으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교훈
연말이라 지하철에 사람이 많다. 다들 떡시루 속에 켜켜이 들어찬 팥시루떡처럼 제 몸을 한껏 납작하게 하고 그 순간을 인내하고 있었다. 그런데 범상치 않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뒷모습에서 빛이 난다. 할아버지는 서서 글씨를 쓰고 있었다. 길게 접은 흰 종이에 붓펜으로 뭘 정성껏 쓰는데,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누가 밀면 밀리는 대로 주변에 개의치 않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들였다. 쓸 때마다 어깨가 살짝 흔들리는 게 춤이라도 추듯 리듬감이 있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해 사람들을 비집고 다가갔다. 도대체 뭘 쓰고 계시나.
[에스프레소] 부끄러움 모르는 세상이 오고 있다
평생 부끄러울 짓을 한 번도 안 하고 살면 좋으련만, 오욕칠정을 가진 인간에겐 버거운 삶이다. 그래서 맹자는 본성 4덕인 인·의·예·지 중 의(義)의 단서를 수오지심(羞惡之心), 즉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 했다. 그 마음은 짐승과 구별되는 사람다움이라고도 했다. 지난 4월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 초 출간한 자서전 ‘희망’에 따르면 그의 인격 성장을 도운 것도 ‘부끄러움’이었다. “여느 소년과 다를 바 없는 성장 과정을 겪으며 주님으로부터 경험한 가장 큰 선물을 받았는데 그것은 바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수치심”이었다는 것이다.
[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조명의 정원
조명은 어둠을 밝히는 것을 넘어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광원 자체가 예술 작품이 돼 감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를 ‘조명을 위한 조명(Light for Light’s Sake)‘이라 부른다. 촛불, 네온사인, 크리스마스 장식이 대표적인 예다. 연말 연시는 도시 곳곳이 이런 빛의 향연으로 물드는 시즌이다. 상점과 레스토랑, 가로수와 건물, 그리고 작은 마을 전체가 반짝이는 조명으로 장식되기도 한다.
[박정훈 칼럼] ‘직업이 공동 대표’ 박석운, 정권의 완장 차다
이재명 대통령의 ‘생중계 국정’은 흥행에 성공했지만, 종종 현실과 동떨어진 ‘사오정류(流)’ 인식을 드러내 논란을 빚곤 했다. 인사(人事) 관련 발언이 그랬다. 17일 업무 보고에서 그는 “제가 정치적 색깔을 이유로 누구를 비난하거나 불이익을 줬나”라고 했다. 불과 며칠 전, 야당 출신 공기업 사장을 망신 주며 몰아세웠던 것을 잊은 듯했다. “유능하면 어느 쪽에서 왔든 상관없이 쓰고 있지 않나”라고도 했다. 법까지 만들어 앞 정부가 임명한 방통위원장을 쫓아낸 것 역시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