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달 ‘공군 창설 80주년 행사’에서 장거리 공대지미사일로 추정되는 ‘북한판 타우러스’를 공개했다. 독일산 미사일인 타우러스(KEPD 350)는 공중 발사 순항미사일로 500㎞ 밖 목표물을 정밀 유도 타격할 수 있는데, 이번에 공개된 북한 미사일의 외형이 이와 유사하다. 우리 군은 타우러스를 북한군 벙커 등을 무력화하는 벙커버스터로 활용 중이다. 이 미사일이 전력화되면 북한도 평양 상공에서 수도권의 우리 군 주요 지하 시설을 타격할 수 있다. 북한은 독일의 IRIS-T를 모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형 공대공미사일과 정밀유도폭탄도 공개했다. 모두 우리 군이 절대 우위라 여겼던 재래식 전력들이다.

그래픽=양인성

◇北 재래식 전력 급성장…한국에 앞서는 기술까지 확보했나

우리 군은 이번 공군 전력 공개가 최근 북한이 주력하는 재래식 전력 강화 움직임의 하나라고 보고 있다. 북한은 지난 5월 전투기에서 발사하는 신형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실사격 훈련을 공개했다. 우리 군은 기존 미국·유럽산 공대공 미사일을 대체하는 국산화 사업을 올해 시작했는데, 북한은 이미 개발해 훈련까지 성공한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무인 공격기 ‘리퍼’와 무인 정찰기 ‘글로벌호크’와 외형이 유사한 무인기도 운용 중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공군 전력은 여전히 우리 군과 비교하면 열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그러나 최근 전력 강화를 위한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2~3년 전까지만 해도 주력 전투기 노후화와 항공유 부족으로 사실상 제공권을 포기한 채 훈련도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기조가 최근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군 전력도 성장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4월과 6월 5000t급 북한판 이지스 구축함인 최현호와 강건호를 잇따라 진수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현호 진수식에서 “우리 해군의 활동은 영해에만 머무를 수 없으며 반드시 원양에로 뻗쳐가야만 한다”고 했다.

육군 재래식 전력의 발전도 눈에 띈다. 북한은 지난 10월 열병식에서 미군의 ‘하이마스’와 유사한 신형 방사포(다연장 로켓)를 공개했다. 240㎜ 로켓탄과 전술 유도 무기도 함께 장착했다. 열병식에서는 신형 전차 ‘천마-20’의 모습도 보였다.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에 따르면, 천마-20에는 대전차 무기 능동 방호 체계가 탑재됐다. 적의 공격을 자동으로 요격하는 방식으로, 성능은 미지수지만 우리 K2 전차 ‘흑표’에도 없는 체계다. 우리 군은 능동 방호 체계를 아직 개발 중이다.

◇본격화되는 핵·상용 무력 병진 정책

북한이 이처럼 재래식 무기 개발·강화에 나선 건 핵 전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이상규 한국국방연구원(KIDA) 핵안보연구실장은 최근 북한이 핵무기를 최대 150발 보유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200여 발, 2040년까지는 400여 발을 보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핵을 탑재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다양해졌다. 북한은 이동식발사대(TEL)로 즉시 발사 가능한 사거리 1만5000㎞ ICBM인 화성-18형도 개발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핵무기들도 재래식 무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효과가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유용원 의원은 “북한은 이미 어느 정도 고도화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다만, 지금처럼 재래식 무기가 뒤처진 상태에서는 핵무기만 무력화되면 전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완책을 고심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정은은 지난 9월 무기연구소를 현지 지도하고 “내년 9차 당 대회에서 핵 무력과 상용 무력 병진 정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했다. 재래식 무기가 핵무기에 비해 뒤떨어지는데, 균형을 맞추기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이 언급한 핵·상용 무력 병진 정책이 한국과 미국의 핵·재래식 통합(CNI)과 유사하다는 의견도 있다. CNI는 미군의 핵 전력과 한국군의 첨단 재래식 전력을 연합해 북핵 위협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한미 정상은 2023년 ‘워싱턴 선언’을 통해 이 시스템을 공식 채택했다. 북한이 군비 경쟁이라는 국제적 추세를 맞춰간다는 말도 나온다. 군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으로 전 세계적인 군비 확장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북한 역시 이 추세에 맞춰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 기술 이전과 해킹으로 전력 강화

북한의 급격한 재래식 무기 전력 강화의 저변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강화된 북·러 관계가 있다. 최근 공개된 무기에는 러시아 기술이 이용된 정황이 많다. 5월 공개한 신형 공대공미사일은 외형상 중국산 ‘PL-12’와 비슷하다고 평가된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았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중국 역시 러시아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북한판 이지스함인 최현호는 러시아 장비를 탑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순항미사일은 러시아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인 ‘지르콘’과 형상이 유사하고, 마스트에 장착된 4면 위상 배열 레이더 역시 러시아 함정에 탑재된 레이더와 비슷하다. 최현호의 복합 방공무기 체계도 러시아제 ‘판치르’와 비슷한 형태로 보인다. 지난 3월 공개한 공중조기경보통제기도 러시아제 수송기인 일류신(IL)-76에 레이더를 부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해킹 역시 북한의 재래식 전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독일 방산업체 딜 디펜스는 작년에 북한 해커 부대 ‘김수키’의 공격을 받았다. 딜 디펜스는 공대공 미사일 IRIS-T 등을 생산한다. 북한이 지난달 공개한 신형 공대공미사일 형태가 이 미사일과 유사하다. 북한은 과거 우리의 잠수함 기술도 해킹한 바 있다.

김정은이 추진하는 재래식 무기 현대화는 당장 우리 군에 큰 위협이 되지 않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북·러 밀착이 당분간 지속되면 북한이 한국에 위협이 될 만큼 재래식 전력 균형을 맞추는 데 5~10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재래식 무기 능력 향상으로 국지 도발 가능성이 커졌다는 주장도 나왔다. 핵무기는 전략 무기이기 때문에 쉽게 사용할 수 없지만, 재래식 무기로는 서북도서 등에서 국지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다음달 新 국방력 5개년 계획 발표할 듯

북한의 재래식 무기 현대화는 2021년 공식화된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에 담겨 있다.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은 우리 군의 국방중기계획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 계획의 핵심은 핵무기 강화이지만, 그 세부 내용에는 재래식 전력 강화도 포함돼 있다.

북한은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2023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그 일부가 언급됐다. 세부 계획에는 해군 수중·수상 전력 제고, 무인기 개발, 전자전 장비 개발, 재래식 무기 공장 확충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국방정보본부는 북한의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 과업 중 상당수가 진전됐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 강화는 기본적으로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을 기반으로 했지만, 최근 그 속도가 더 빨라진 것으로 보인다”며 “북·러 밀월로 인한 러시아 기술의 급격한 이전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올해 자신이 언급한 ‘핵·상용 무력 병진’ 정책을 내년 1월 9차 당 대회에서 구체화할 전망이다. 기존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이 마무리됐기 때문에 새로운 국방 계획이 필요하다. 군 관계자는 “당 대회를 계기로 열병식을 열고 신형 재래식 무기 체계 강화 방향의 청사진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북한의 현 상황을 감안할 때 핵·상용 무력 병진 정책이 경제적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세계 최빈국 수준인 북한이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는 재래식 전력 강화에 나서면서 경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의 작년 국민총소득(GNI)은 44조4000억원이었다. 한국 국방 예산(59조원)에도 못 미쳤다. 국방 예산 중 무기 관련(방위력 개선) 예산만 따져도 17조6532억원으로 북한 GNI의 40% 수준이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구소련이 미국의 ‘스타워즈’ 계획을 방어하기 위한 무리한 군비 투자로 무너졌던 것처럼, 재래식 무기 전면 투자는 북한 전체 경제에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줄 것”이라고 했다.

☞핵·상용 무력 병진 정책

김정은이 지난 9월 언급한 핵·재래식 무기 통합 발전 계획. 핵전력에 비해 뒤처진 재래식 전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스타워즈 프로젝트(SDI)

1980년대 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전략방위구상. 우주에 위성을 띄워 구소련 핵미사일을 요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구소련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방비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고, 체제 붕괴가 가속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