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리겐치아’가 ‘프롤레타리아’의 의식을 고양해야 한다’는 레닌의 속삭임은 80년대 무식을 겨우 면한 대학생들 피를 끓게 했다. 기자도 노동 영화 제작단에 들어가 노동자 목소리를 글로 풀며 주로 청소를 했다. 선배가 만든 영상 비평회가 있던 날이었다.

“옷이 왜 저래? 공장 다니면 빨강, 노랑 원색을 좋아한다니까.” 투옥 경력이 있는 서울대 선배는 ‘지력이 낮으면 원색을 좋아한다’며 화면 속 옷이 너무 연하다고 했다. 끼어들었다. “노동자를 너무 획일화한다. 구로동 가보면 다른 색도 많이 입던데.” 선배가 화를 냈다. “고대 애들은 왜 저렇게 머리가 나빠?”

그런 운동권에 신물이 났지만, 노동자가 ‘지적 약자’라는 생각을 다 버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최근 ‘쿠팡 논쟁’을 보며 기자의 굳은 머리를 때리고 싶어졌다.

서울 시내의 쿠팡 캠프에서 배송 기사들이 배송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뉴스1

민주노총이 노동자 건강권을 이유로 ‘심야(자정~새벽 5시) 배송’ 제한을 의제로 들고나왔다. 용접공으로 일하며 글을 쓰는 천현우 씨가 SNS에 글을 썼다. 참고로 그는 중소기업 현장 실습을 나간 첫날 산업재해를 당해 큰 부상을 입었고, 지인 글에 따르면 새벽배송 시스템을 혐오해 ‘쿠팡 선물’도 거절하는 사람이다. 천씨 글은 대략 이렇다. “쿠팡은 평균적 중소기업보다 좋은 일자리다…나도 새벽 배송을 없애고 싶지만, 전제가 있다. 노동자가 여타 중소기업에서 쿠팡보다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천현우 글에 노동운동가 P씨가 반박했다. “천현우의 글을 보니, 착취 기업 항문이나 핥는 행태가 여전하구나 싶다…쿠팡은 로켓 배송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자를 쥐어짜는 괴물이다” “(그나마 쿠팡이 낫다는) 그런 분들이 한국을 장시간 노동, 야간 노동, 산업재해 불지옥으로 만든”것이라고 했다. 후배 운동가가 P의 글을 반박했다. “용접하고 글도 쓰며 사는 청년이 대관절 어떤 권능을 가졌기에 한국을 불지옥으로 만들 수 있는지 모르겠다…노동엔 오직 고통만 존재하는가? 이거야말로 방구석 룸펜의 배부른 상상력이라고 한다면 그는 뭐라 할 것인가.”

어느 노동 보건 전문가는 “주야 교대 근무보다 상시 야간 근무가 건강에 더 위협적이다. 상시적 야간 근무는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런 비아냥이 나왔다. “고등어 굽는 연기에서 나오는 1급 발암 물질은 왜 언급하지 않으시나.”

페이스북에 자신을 ‘고졸 택배 기사’라고 적은 보수 성향 청년 노동자 글은 이렇다. “쿠팡 새벽 배송은 더더욱 과로사가 불가능하다. 9시 출근 물량 없는 날엔 1시 출근 배송은 7시 전에 끝내야 한다… 과로사가 가능하다면 그 이유는 주 5일을 강제당하니 모자란 소득을 채우기 위해 투잡을 뛰는 경우다. (2021년 택배 기사 잇단 사망) 그로 인해 10시 이후 배송 제한이 생겼고, 그 전에 끝낼 만큼만 구역을 수술당한 기사들이 택한 건 결국 투잡이었다… 기업과 정부보다 기사들을 더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건 당신들의 선의다.”

기자는 이 논쟁이 120년 전,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의 ‘혁명 주체 논쟁’보다 더 흥미롭다고 본다. 노동자는 충분한 주체다. 주체끼리의 진일보한 논쟁을 기대한다.

한 물류 회사 CEO가 이런 말을 했다. “택배 기사는 좌회전을 안 한다. 신호 대기하느니 우회전 반복하는 게 빠르다고 한다. 아무리 AI로 알고리즘을 짜도, 현장을 장악한 택배 기사를 아직은 이길 수 없다.” 그들은 땀으로 일군 스마트 지능, ‘일머리’를 장착하고 발전한다. 여러 현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과 ‘키보드 진보’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다. ‘새벽 배송 금지’보다 ‘새벽 망상 금지’가 운동권 발전을 위해 더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