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방북 취재 때 본 평양의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은 압도적이었다. 평양의 예체능 영재들이 고강도 훈련을 받고 집중 육성되는 ‘방과 후 특수 교육 기관’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마치 동화 세계 같다”고 극찬한 이곳은 규모도 상당했지만 아이들의 기량이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오전 시간에 남한 손님맞이에 동원된 아이들은 싫은 기색 하나 없이 고난도 체조와 무용 동작을 보여주는 등 재주를 뽐냈다. 마치 기계 같았다. 이곳 아이들은 최근 노동당 창건(10·10) 80주년 기념 대집단체조(매스게임)와 예술 공연에도 투입됐을 것이다.

지난 6월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준공식에 참여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운데), 부인 리설주 모습.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은 이 공연이 끝난 뒤 엄지를 여러 번 치켜세웠다. 10·10절 이후 행사 참가자들에게 “여러분들 모두가 너무나도 고맙고 소중하다”며 ‘감사 연설’까지 했다. 김정은은 2013년생 딸 김주애와 같은 세대인 10대를 향해 “기특한 우리 청소년 학생 동무들”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미래 세대를 통한 체제 결속과 함께 딸 주애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였다. 약 20분에 걸친 연설이 계속되는 동안 북한 TV는 교복을 입은 10대 학생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외모의 여학생들이 눈물 흘리는 장면을 여러 번 클로즈업했다.

그는 주애가 아홉 살 때인 2022년, ICBM 시험 발사장에 딸을 대동하며 김주애의 존재를 처음으로 대내외에 공표했다. 낙후한 지방을 천지개벽하겠다며 지난해부터 무지막지하게 몰아붙이고 있는 ‘지방 발전 20×10 정책’이 종료되는 2033년은 주애가 스무 살이 되는 해다. 10년 내 20곳에 생필품 생산 공장을 짓겠다며 군부대를 동원해 공장을 세우고 있다. 김정은은 거덜난 나라를 물려받은 자신과 달리 ‘핵’과 ‘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부강한 북한을 딸에게 물려주고 싶을 것이다. 이 계획에서 가장 거슬리는 존재는 단연 국경을 맞대고 있는 자유롭고 풍요로운 남한이다.

2033년까지 김정은이 제시한 목표대로 북한 전역에 현대식 공장 200개만 완공되면 경제발전이 이뤄질까. 문제는 공장만 짓는다고 생산품이 마구 쏟아져 나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전기·원료·각종 원자재 등의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무려 10년이나 공들여 지난 7월 개장한 2만명 수용 규모의 원산·갈마 관광 리조트 단지는 또 어쩔 것인가. 김정은은 이 리조트가 완공되자 “기적 같은 성취”라고 했지만, 해외 관광객이 원산을 여행지로 선택할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개발 비용 회수도 어려울 것이다. 이런 대규모 고급 리조트 단지는 개장 초기에 성패가 갈린다.

원산·갈마를 ‘기적’의 공간으로 만들 방법은 남한과의 거래 외에는 없다. 80대 이상 이산가족 생존자는 2만3400여 명이다. 이들에게 먼저 원산의 문을 개방하는 건 어떤가. 이산가족 상봉을 꼭 금강산에서, 한 번에 100가족씩만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적대적 국가’와는 그렇게 못 하겠다고? 원산에서 전대미문의 대규모 행사가 열린다면 남한 가족들과 만난 북한 주민들은 ‘가장 적대적인 교전국’ 사람들에게 원수님의 최대 치적을 자랑하느라 바쁠 것이다. 북한이 가장 적대적인 국가의 호주머니를 합법적으로 털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김일성 때부터 해온 ‘이밥(쌀밥)에 고깃국’ 타령은 누구보다도 김정은 자신이 지긋지긋할 것이다. 인민들 먹는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해 딸에게까지 자기처럼 주민들에게 눈물로 호소하게 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내년 초로 예상되는 제9차 당대회에서는 북한의 미래 세대가 공감할 만한 구체적인 비전과 실행 계획이 제시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