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의 주택 담보대출 한도를 최고 2억원 이하로 대폭 낮추고, 전세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를 금지한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이 발표된 지 3주가 지났다. 주택 담보대출을 6억원 이하로 제한했던 6·27 대책과 공공 주도 개발로 2030년까지 서울과 수도권에 135만호를 신규 착공하겠다는 9·7 대책에 이어,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이다. 현금 부자 아니면 집을 사기 어렵게 만든 초강력 규제로 집값 상승세는 다소 누그러졌지만, 대출이나 전세 끼고 내 집 마련을 준비했던 실수요층은 ‘주거 사다리 걷어차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부동산 경제학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손재영 건국대 명예교수를 만나 새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국내 1세대 부동산 경제학자 손재영 건국대 명예교수. 학계뿐 아니라 국책연구원과 정부위원회에서 풍부한 정책 경험을 쌓은 손교수는 "주택 정책의 본령은 저소득층에게 인간다운 주거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집값 잡겠다고 실수요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했다./김지호 기자

-이재명 정부의 대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 정부 시즌2냐 아니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6·27과 10·15 대책은 집을 사려는 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문 정부와 비슷하다. 하지만 문 정부보다 자제력과 인내력이 있는 것 같다. 문 정부와 달리 아직 세금 대책을 꺼내지 않았다. 또 훨씬 빨리 공급 확대 대책(9·7 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대책이 효과 있을 것으로 보나.

“초강력 수요 억제책은 역대 정부가 특단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반복했던 레퍼토리지만, 효과는 길어야 두세 달밖에 가지 않았다. 올해 초 오세훈 서울시장이 토지거래허가제를 해제했다가 큰 곤욕을 치른 뒤 3월에 재지정했다. 그런데 두 달 지나고 다시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주택 시장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이는데, 정부 대책은 단기적으로 시장을 왜곡시켜 실수요자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다.”

-어떤 고통을 말하는 건가.

“규제 지역 분양 아파트 중도금과 잔금 대출 한도가 축소되면서 청약 실수요자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 또 전세대출 한도가 축소돼 전세 세입자들이 계약 만기 때 전세값 인상분 마련이 어려워질까 불안에 떨고 있다.”

-역대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의 집값 차이만 커졌다.

“주택시장은 어마어마하게 큰 시장이다. 강남 3구 아파트가 38만호로 전국 아파트의 3%밖에 안 되지만, 한 호당 20억원으로 계산하면 760조원이다. 이런 큰 시장에 정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거의 없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한강변 아파트 단지. /뉴스1

-공급 측면의 문제는 없나.

“강남은 위로 한강이 있고 밑으로는 그린벨트에 둘러싸여 있는 섬 같은 곳이다. 제한된 공간에 주택 공급을 늘리려면 재건축이 활성화됐어야 하는데 거의 10년간 재건축을 못 하게 규제했다. 공급 부족이 누적된 효과가 지금 강남 주택의 희소성을 높인 것이다.”

-정부는 투기와 가수요가 집값 상승의 주범이라고 하는데.

“잘못된 진단이다. 오히려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가 ‘똘똘한 한 채’ 현상을 심화시킨 부작용이 더 크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지방 집을 팔고 강남 집을 사려는 것이다. 최근 초강력 규제에도 강남의 신축 아파트 30평형대가 60억원, 75억원에 거래되는데, 이 사람들은 대출 없이 전액 현금으로 지급하고, 실거주도 한다. 정부 규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정부 대책으론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뜻인가.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실패한 데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교훈은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예측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것은 거짓말이다.”

-강남 집값이 너무 오른 것은 사실 아닌가.

“집값이 얼마면 정상이냐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부동산도 시장 원리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만나서 거래되는 가격이 있을 뿐이다. 어떤 수준이 적정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동료 교수가 선진국 집값 문제를 연구했더니 뉴욕이나 도쿄, 런던, 파리 등 대도시의 부촌 집값이 평당 2억원을 넘었다. 서울 강남이 지금 그 수준으로 가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그래도 강남 집값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여론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문 정부 때는 강력한 규제를 발표하면 여론이 박수를 쳤다. 강남 주택 소유자들이 피해를 볼 테니까 ‘속 시원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런데 이번 대책이 나온 뒤 여론이 부정적으로 돌변했다. 아마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40대 후반~50대가 지금 집을 사거나 옮길 생각을 가진 실수요층이라 그런 것 같다. 초강경 대책으로 이 연령대가 직접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보수 언론의 비판에 꿈쩍 안 하던 민주당이 여론 동향에 민감해진 게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수요 억제가 아니라 공급 확대와 주거 여건 개선을 통해 수요를 분산시켜야 한다. 좁은 강남에 주택을 무제한 늘릴 수 없다. 강남 수준의 주거 여건을 갖춘 신도시를 여러 곳 만들어야 한다. 이미 만든 신도시도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같은 교통망을 대폭 확충해 강남으로 몰리는 주거 수요를 분산시켜야 한다. 성공 사례도 있다. 동탄에서 서울까지 버스로 1시간 30분 걸렸는데 GTX가 개통돼 수서까지 20분이면 오니까 동탄 집값도 오르고 수요도 많이 늘어났다.”

-서울 근교의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찬반 논란이 있다. 어떤 입장인가.

“박정희 정부가 1971년 그린벨트를 지정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유사시 적의 침투를 저지하고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려는 국방 전략의 일환이었고, 인구가 늘어날 경우를 대비해 후세를 위한 여유 공간을 남겨 놓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후세가 누구냐. 지금 우리다. 우리 세대 쓰라고 저축한 땅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환경 파괴는 막아야 한다. 하지만 해제를 해도 환경적인 부작용이 없는 땅이 굉장히 많다. 특히 서울 인근에 농업을 위해 그린벨트로 묶어 놓은 지역을 과감히 풀면 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다.”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주택 정책의 본령은 저소득층에게 인간다운 주거를 제공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집값이 올라 저소득층 주거가 불안해질 경우 임대주택이나 주거 보조금 등으로 주거 안정을 돕는 것이 정부 역할이다. 본질에서 벗어나 부자들을 어떻게 괴롭힐까 고민하는 것은 주택 정책이 아니라 주택 정치다. 단기적으로 집값 때려잡겠다고 실수요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투기 억제 원조는 박정희… 좌파 정권이 충실한 계승자”

손재영 건국대 명예교수는 “투기 억제를 통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킨다는 정책의 원조는 박정희 정부”라며 “노무현·문재인 등 좌파 정부가 역설적으로 박정희 패러다임의 충실한 계승자가 됐다”고 했다.

-투기 억제가 부동산 정책 기조가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흔히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고 다주택자 규제를 강화한 노무현 정부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박정희 정부다. 경제성장 초기인 1967년 토지가격이 급등하자 정부는 투기를 억제해 가격을 안정시킨다는 목적으로 부동산투기억제세를 도입했다. 가격 급등 지역에 국세청, 검찰, 건설부 합동 단속반을 파견해 시장을 냉각시키는 조치도 그때부터였다. 정부가 투기꾼과 투기 부동산을 가려내 제재함으로써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이른바 ‘박정희 패러다임’이 이후 부동산 정책의 근간이 된 것이다.”

-부동산투기억제세가 지금은 사라졌는데.

“부동산투기억제세는 1974년 양도소득세로 바뀌었고,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는 다주택, 고가 주택,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규제로 강화됐다. 극단적 처방을 써서라도 투기를 잡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발상인데, 어떻게 보면 좌파 정부가 박정희 패러다임의 충실한 계승자가 된 것이다.”

-투기 억제도 필요한 것 아닌가.

“원하든 원치 않든 부동산은 자산이고 자산 가격은 변동한다. 가격이 오를 것 같으면 수요가 늘고 내릴 것 같으면 수요가 줄어든다. 실수요자라고 해서 가격이 내릴 부동산을 사지는 않는다. 따라서 실수요자와 투기 수요자를 구별한다는 발상은 성공할 수 없다. 투기 억제의 그물코를 좁혀서 모두 잡아낸다는 일념으로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니 전 국민이 낚여 올라온다. 그중 상당수는 정부가 지원하고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다. 특히 어렵게 내 집 마련을 하려는 젊은 부부들이 직격탄을 맞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목돈이 부족한 젊은 부부들이 전세를 끼고 먼저 집을 산 뒤 나중에 보증금을 갚고 입주하는 게 보편적인데, 갭투자를 금지하는 10·15 대책이 이런 방법을 원천 봉쇄했다."

손재영 교수는 누구?

손재영(69) 건국대 명예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부동산 및 도시경제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미 UC버클리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국내 1세대 부동산 경제학자다. 도시경제학은 도시의 형성과 토지 이용, 주택 시장 등을 경제학적 틀로 분석하는 학문이다. 박사 학위 취득 후 국내 부동산 정책 싱크탱크인 국토개발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거쳐 국내 부동산학의 메카인 건국대에서 부동산대학원 원장과 부동산·도시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하며 많은 부동산 전문가를 양성했다. 손 교수는 학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택정책심의위원회, 중앙도시계획위원회, 국민경제자문회의 등 주요 정부 위원회에 참여해 이론을 정책에 접목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부동산 정책과 시장을 분석한 ‘토지시장의 분석과 정책 과제’, ‘땅과 한국인의 삶’,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다’, ‘부동산 상식의 허와 실’, ‘부동산 정책 Why & How’ 등의 저서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