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가장 존경한 인물은 마이클 패러데이(1791~1867)였다.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패러데이는 제본소에서 일하면서 과학을 독학했다. 고용주는 성실하고 똑똑한 패러데이를 주변에 자랑했는데, 이를 들은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 과학자 험프리 데이비의 강연 티켓을 패러데이에게 선물한다. 강연에 깊은 감명을 받은 패러데이는 데이비의 연구 조수가 되고 이후 물리와 화학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다. 패러데이의 전자기 실험 결과를 수학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맥스웰, 맥스웰의 방정식을 발전시킨 것이 상대성 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의 학문적 뿌리가 패러데이인 셈이다.

일러스트=김성규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과학의 정점에 섰지만 패러데이는 평생 겸손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기사 작위를 사양하면서 “그냥 패러데이로 남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묻히는 것도 사양했다. “지적인 노력에 상을 준다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패러데이는 과학과 대중을 연결한 최초의 과학 커뮤니케이터였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 공개 강연을 열었다.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유명 과학자의 강연’, 자신의 인생을 바꾼 두 가지를 돌려주려고 한 것이다. 양초 한 자루로 화학 원리를 설명한 그의 강연은 ‘양초의 과학’이라는 책으로 남아 있다. 강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양초가 주변을 밝히듯, 여러분도 이웃을 밝히는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패러데이의 유산은 BBC의 크리스마스 과학 강연으로 지금도 이어진다. 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같은 최고의 과학자들이 대중과 만난다.

프랑스 최고 권위 대학 ‘콜레주 드 프랑스’에는 노벨상 수상자 21명과 필즈 메달 수상자 9명이 있다. 1530년 설립된 이 대학은 학위를 수여하지 않는다. 대신 교수는 강의를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무료 공개 강좌로 진행한다. 연간 10만명이 넘는 시민이 강연을 듣는다. ‘대학 밖으로 나가는 살아 있는 지식’이 이 강연의 모토이다.

패러데이의 강연과 콜레주 드 프랑스는 과학 강국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는 것, 과학에 세금을 지원하는 것, 그 혜택으로 성장한 과학자가 대중에게 과학을 설명하고 누군가 다시 그 길을 따라가는 것. 이 사이클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 제대로 된 과학이 자란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가 지난 5월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5 미래금융포럼'에서 강연하고 있다. /조선미디어 DB

한국은 어떨까.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궤도 사건’을 보자. 지난달 안준용 고려대 교수가 소셜미디어에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의 EBS 유튜브 채널 출연 장면과 함께 “과학 커뮤니케이터분들 헛소리 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궤도가 쌍꺼풀이 ‘우성 형질’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는데 시대에 뒤떨어진 지식이라는 것이다. 많은 과학자가 “전문가도 아니면서 언젠가 사고 칠 줄 알았다”며 동조했다. 궤도가 135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안될과학’ 운영자이자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점 때문에 파장이 거셌다.

궤도의 해명을 들어봤다. 그는 “영상은 EBS와 함께 기획한 것으로 전문가 조언을 받아 현재 교과서에 충실하게 만들었다”면서 “안 교수가 지적한 최신 연구 동향을 담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교과서와 다르게 설명할 수 없는 만큼 교과서부터 개정해야 해결될 문제”라고 했다. 콘텐츠를 만들 때마다 많은 고민을 하고, 최대한 정확한 내용을 담으려 노력한다고도 했다.

과학자들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과학적으로 틀린 부분을 지적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더 각광받는 현상이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학 선진국에선 과학자의 의무로 생각하는 ‘대중과의 소통’ 역할을 왜 유독 한국에선 과학자들이 ‘한낱 유튜버’라고 폄하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차지하게 됐는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한 과학자는 “한국 과학계엔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인기를 끌고 유명해지기 위해서나 하는 품격 떨어지는 일이라는 인식이 여전하다”고 했다. 바로 그 품격 떨어지는 일을 패러데이가 했고,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들이 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과학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다’고 비판하는 과학자를 자주 본다. 그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전자기학의 아버지이자 ‘세계 1호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마이클 패러데이는 1825년 영국 왕립연구소에서 일반 시민을 위한 물리·화학 강연을 선보였다. 이는 200년간 영국 과학계의 전통인 ‘크리스마스 강연’으로 자리잡았다. 패러데이는 오늘날까지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로 꼽힌다. /영국 왕립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