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은 지난해 2월 개봉, 117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연합뉴스

2024년 2월 ‘건국전쟁’의 감독 겸 제작자 김덕영은 영화진흥위원회에 예술영화와 독립영화 인증 신청을 했다. ‘독립영화 인정 필증’(2024년 2월 21일 자)을 받은 며칠 후 ‘독립영화 불인정 통지서(2024년 2월 16일 자)’를 다시 받았다. 직원 실수라고 해서 넘어갔다. 90년대부터 혼자 영화를 제작해온 감독의 저예산 다큐멘터리에 ‘독립 영화’ 대신 ‘예술 영화’ 인증만 해 준 게 꽤나 어색하다.

‘건국전쟁’은 지난해 2월 개봉 후,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기술적으로 투박했지만, ‘이승만 팩트’에 감동받은 사람이 많았다.

김덕영은 지난해 여름, 영진위가 발행한 ‘한국영화산업 2024 상반기 결산 보고서’를 본다. ‘남은 인생 10년’(43만명)이 다큐 부문 1등이라고 나왔다. 감독 항의, 위원장 사과 후 수정판이 나왔다. ‘건국전쟁’은 117만명으로 다큐 부문 1위, 한국 영화 8위였다. 영진위는 수정판에서 ‘통합전산망 오류’라고 적었다.

끝이 아니다. 지난 2월 나온 ‘2024년 한국 영화 산업 (연간) 결산’ 109쪽. “2024년 전체 독립·예술 영화 박스오피스 흥행 1위는 매출액 109억원(관객 수 117만명)을 동원한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차지했다.” “80대 원로 배우들의 열연으로 인생의 끝에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내용으로 고른 연령층이 관람한 ‘소풍’이 매출액 32억원(관객 수 36만명)으로 2위에 올랐다.” ‘건국전쟁’만 빼고 다른 영화는 모두 내용을 소개한다. “7위는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이자 정치인 김대중의 일대기를 기록한 탄생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길 위에 김대중’이 매출액 11억원(관객 수 12만명)이었다.” ‘김대중’이란 이름은 넣어도, ‘이승만’ 이름 석 자는 차마 쓰지 못하는 이 챕터의 필자는 영진위 직원 ‘OOO’씨다. 백서에 그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지만, 지면에는 밝히지 않겠다. 영진위 ‘조직 문화’인 듯해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용산CGV에서 영화 '독립군:끝나지 않은 전쟁'을 관람하고 있다. 오른쪽은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조진웅. /뉴스1

영진위는 지난 9월 19일 ‘독립영화 인정 소위원회’를 열어 윤석열 정부 시절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과 독립군을 다룬 ‘독립군: 끝나지 않은 전쟁’에 독립영화 지위를 줬다. 내용 지적은 전혀 없고 “AI를 활용한 부분이 인상적”이라는 평이 주를 이뤘다. 같은 심사에서 ‘건국전쟁 2: 프리덤 파이터’는 떨어졌다.

공공기관의 심사 회의록에 평가자 이름을 왜 가리는지 모르겠으나, 기자가 받아본 회의록 속 익명의 심사위원의 ‘건국전쟁2′에 대한 평가에 이런 대목이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곡해하고 편향되게 다수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위험하다.”

‘선량한 다수의 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권력은 과거 김추자·신중현의 노래를 금지시키고, 유현목과 하길종의 영화를 잘랐다. 그걸 두 자로는 ‘검열’이라 부른다. 검열적 시선에는 ‘내 편과 저편’ ‘아군과 적군’ 구분만 있다.

‘노무현입니다’ ‘문재인입니다’ ‘노회찬 6411’, 성주 사드 배치 반대 시위를 다룬 ‘파란나비 효과’, 18대 대선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김어준의 ‘더 플랜’은 영진위가 인정한 ‘독립영화’다.

과거 영진위는 기이하게도 예산 집행 기관과 수혜자가 뒤엉킨 조직이었다. 어제는 영화사 사장이었던 이가 오늘은 기관의 실무자가 되어 예산을 집행했다.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자 지원 대상을 현장 사업 종사자가 결정하는 이상한 문법은 ‘전문적 식견’으로 포장돼왔다.

그나마 이런 ‘이해 충돌’은 가뭄에 콩 나듯 감사에 적발되기도 하지만, ‘이념 편향’은 손대기도 어렵다. ‘심사위원의 자율적 판단’이라는 외피를 쓰기 때문이다. ‘좌파 전체주의’의 기운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