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타워, 서울올림픽경기장, 낙산공원 등 서울을 배경으로 넷플릭스가 제작한 K팝 영화 '케데헌'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를 두고 논쟁이 붙었다. “재주는 K팝이 부리고 돈은 해외서 챙긴다”는 비관과 “케데헌이 K문화를 알렸으니 아무튼 윈윈”이라는 낙관이다. “케데헌의 성공은 국격과 엔터 산업의 입장을 분리해 봐야 한다”고 K팝 업계는 지적한다. 고무적 성과로 볼 수 있지만, 난감한 경쟁자가 등장했다는 뜻이다.

지금은 환호하기보다 내부 점검에 더 신경 쓸 때라고 생각한다. 케데헌 열풍과 달리 식어가는 토종 OTT들을 보라. 넷플릭스만큼 국제적인 흥행망이 없다면 한국에서 제2의 케데헌은 불가능하다. “이제 글로벌 K팝 흥행 게이트키퍼는 넷플릭스”(워싱턴포스트)라는 분석이 뼈를 때린다. K팝 열풍을 흡수할 국내 공연·관광 인프라 부족도 해묵은 과제다. 한 대형 엔터사 임원은 “케데헌 열풍에 한국 방문객이 늘었다지만 정작 인기 K팝 공연 대부분은 해외에서 열리고, 관객도 그리로 몰린다”고 토로했다.

특히 ‘K팝 통계 부족’이 위기감을 키운다. ‘한국인이 만들지 않은 K팝 성공’이 논란인 건, 이런 흥행이 한국에 남기는 낙수 효과를 가늠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국 내 K팝 인기를 객관적으로 살필 통계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예컨대 K팝 담당 기자들은 매년 1월 관세청 음반 수출입 통계를 챙긴다. K팝에 관해 가장 오래 누적된, 사실상 유일한 국가 연간 데이터이기 때문. 콘텐츠진흥원이나 문체부의 K팝 산업 조사 역시 이 통계를 기본 지표로 삼아왔다. 하지만 이 수치는 장르 분류, 해외 팬덤 대리 구매, 해외 음반으로 분류된 K팝 등을 반영하지 않아 K팝 시장의 변화와 성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국내 4대 엔터사(하이브·SM·JYP·YG)의 공시 자료만으로 전체 업황을 파악하기는 역부족이다.

통계가 빈약하면 정책에 힘이 실리지 못한다. K팝 공연장 신설을 논의하다가도 수요 예측을 뒷받침할 숫자가 부족해 번번이 무산돼 왔다. K팝 산업은 인지도와 영향력에 비해 정책 통계는 과소 집계되고 있는 것이다. 관광 정책 기관과 지자체들이 K팝으로 얻은 성과를 홍보하는 자료는 흔해도, 정작 흥행 효과를 체계적으로 살핀 연구 자료는 드물다. 최근 서울시도 “케데헌이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영화에 등장한 명소를 찾는 서울 관광객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면서도 “명확히 구분은 어렵다”는 단서를 달았다. 글로벌 K팝 흥행의 파급효과에 대한 근거 연구가 너무 부족하다.

2018년 BTS가 첫 빌보드 200 정상에 오른 뒤 K팝은 국가 대표 효자 상품으로 불렸다. 그러나 K팝 통계는 아무도 모르는 ‘블랙박스’다. 대형 K팝 흥행이 남기는 가치가 무궁무진하다는 건 알지만, 관련 산업과 정책으로 연결하려면 신뢰할 만한 수치와 장기적 접근이 필수다. K팝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곰’이 될지, 함께 성장하는 ‘여우’가 될지는 정부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