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린 지식 강연회 TED 콘퍼런스 무대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가 섰다. 게이츠가 작은 유리병 뚜껑을 열자 모기 5~7마리가 청중 사이로 날아갔다. “모기는 말라리아를 퍼뜨립니다. 가난한 사람만 이걸 겪을 이유는 없잖아요.” 빅테크 거물과 석학으로 가득 찬 행사장은 순식간에 술렁였다. 게이츠가 “물론 방금 풀어둔 모기는 깨끗한 모기입니다”라고 말하자 객석에선 폭소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TED 창업자 크리스 앤더슨은 “게이츠는 오늘 이후 세상에 또 하나의 버그(컴퓨터 결함·벌레)를 풀어놓은 인물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게이츠는 질병 연구와 공중보건 시스템 구축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그중 말라리아 모기 퇴치에 가장 많은 13억달러(약 1조80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왜 모기일까. 연간 상어로 인한 사망자는 세계적으로 10명, 개는 2만5000명, 뱀은 5만명 수준이다. 하지만 말라리아로 대표되는 모기 매개 질병 사망자는 2023년 기준 60만5000명으로 사람 간 살인(47만5000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누군가에겐 앵앵거리며 가려움을 줄 뿐인 조그만 모기가 인류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라는 뜻이다.
게이츠의 노력은 2012년 비정부기구(NGO) ‘타깃 말라리아’ 출범으로 이어졌다. 1억년 전 지구에 등장한 모기는 인류가 탄생할 때부터 치명적인 적이었다. 360만년 전 살았던 인류의 조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루시’의 사망 원인이 말라리아 감염으로 추정될 정도이다. 인류는 수많은 무기로 모기를 공격했다. 화학 살충제 DDT처럼 극적인 효과를 본 경우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기의 저항성이 커지면서 사망자 감소세가 정체되는 양상이 이어졌다.
타깃 말라리아 과학자들은 말라리아를 뿌리 뽑기 위해 첨단 기술 ‘유전자 가위’와 ‘유전자 드라이브’를 내세웠다. 우선 유전자 가위로 말라리아를 옮기는 얼룩날개 모기에 불임 유전자 또는 수컷만 낳게 하는 유전자를 만들어 넣는다(암컷만 흡혈한다).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로는 이 유전자가 후손에게 99% 이상 전달되도록 한다. 멘델의 유전 법칙에 따르면 유전자는 50% 확률로 후손에게 전달되는데, 이를 무시하고 모든 후손이 조작된 유전자를 갖게 하는 것이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얼룩날개 모기의 유전자를 조작해 자연에 풀어놓으면 개체 수가 점차 줄어들다 결국 멸종하게 된다.
타깃 말라리아는 여러 종류의 유전자 조작 모기를 만들고 안전성과 환경 영향을 평가해 왔다. 지난달 11일에는 아프리카 연구 거점인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의 수루쿠딘간 마을에 수컷 자손만 생산하도록 설계한 모기 1만6000마리를 풀어놓았다. 세계 과학계의 이목이 실험 결과에 쏠렸다. 하지만 일주일 뒤 부르키나파소 보건과학연구소에 경찰들이 들이닥쳐 연구실을 봉쇄하고 사육 시설에 남은 모기를 모두 죽였다. 이미 방생한 유전자 모기도 없애야 한다며 수루쿠딘간 마을에 대대적인 방역도 진행됐다.
부르키나파소 정부는 “환경·생태적 파급과 윤리적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유전자 조작 모기가 자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타깃 말라리아 측은 모든 실험이 유엔 생물다양성협약의 안전 기준을 따랐을 뿐만 아니라, 이번 모기 방생이 부르키나파소 국가 생물안전청의 승인을 받았다며 반발한다. 과학계에서는 쿠데타로 집권한 이브라힘 트라오레 군사 독재 정권이 외국 자금에 기반한 NGO 활동을 ‘주권 침해’로 규정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유전자 조작 모기를 생체 무기화하려는 서방의 시도” “사람을 불임으로 만들어 인구 증가를 막으려는 것”이라는 식의 음모론에 시달리는 타깃 말라리아를 공격함으로써 독재 정부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이언스는 “과학에 대한 가혹하고 굴욕적인 습격”이라고 했다. 타깃 말라리아와 게이츠 재단은 거점을 옮겨서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부르키나파소가 말라리아에서 먼저 해방될 수 있는 가능성 높은 기회를 걷어찬 것은 분명하다. 권력만 지킬 수 있다면 국민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위정자들의 사고방식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부르키나파소의 한 해 말라리아 감염자는 800만명, 사망자는 2만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