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도 아닌데 지지율이 94.7%란다. 서울시 36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구(區)에 기업이 2만개 있고, 외국 관광객만 한 해 300만명이 온다. OECD는 냉난방에 와이파이가 되는 버스 정류장과, 바닥에도 파랑·빨강 신호등이 들어오는 이 동네 횡단보도를 우수 행정 사례로 채택했다. 낙후된 폐공장 지대였던 성수동은 영국 매체 ‘타임아웃’이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네 4위’로 꼽았다.
12년째 연임하며 ‘성동에 살아요’ 신드롬을 이어가고 있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크리에이티브하다며 세계가 칭찬하는 우리 정책의 원천은 구민들의 깨알 민원”이라고 했다. 민주당 소속이지만 보수·진보 모두의 지지를 받는 그는 “정책엔 좌우가 없고 실사구시만 있다”고 했다.
◇ 내가 낸 세금 아깝지 않도록
-지지율 94.7%는 믿을 만한 여론조사인가?
“한국리서치가 구청장 직무 수행 평가를 조사해 발표한 것이니 믿으셔도 될 것 같다(웃음). 재작년엔 94.7%, 작년엔 91%의 긍정 평가를 받았다.”
-비결이 뭘까?
“구민들이 ‘내가 낸 세금이 아깝지 않다’ 여기시도록 열심히 일하는 것!”
-12년째 연임이다.
“정원오라는 상품을 써보니 ‘계속해서 쓸 만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첫선거는 3% 차로 아슬아슬하게 당선됐는데 두 번째, 세 번째는 과반을 훌쩍 넘어 여유 있게 이겼다.”
-민주당이 참패한 2022년 지방선거에서는 한강 벨트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민주당 소속 구청장이었다. 시장은 오세훈, 구청장은 정원오를 선택한 ‘교차 투표’가 화제였다.
“당의 지지율이 낮은 상태에서 어렵게 치른 선거였지만 ‘일 하나는 잘하지 않느냐’며 뽑아주셨다. 정책엔 좌우가 없고, 행정은 실사구시가 답이라는 확신을 더욱 갖게 됐다.”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해 문자로 민원 받는 구청장으로 유명하더라.
“모든 정책은 민원에서 출발한다. 말 그대로 ‘백성이 원하시는 일’이니 3~4일 안에 해결하려고 빨리빨리 움직인다.”
-하루 평균 30통, 많게는 100통의 문자가 온다던데
“쏟아지는 문자가 제 에너지의 원천이다(웃음). 단체장들이 흔히 자기가 굉장히 많은 일을 했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해 놓은 게 뭐냐’고 묻는다. 이런 미스 매칭을 없애기 위해 모든 민원을 꼼꼼히 읽고 수요를 파악한 뒤 법을 고쳐서라도 해결해 보려고 노력한다.”
◇ 100대 공약 중 95개 실천
-2014년 첫 출마할 때 자서전이 아닌 ‘100대 공약집’을 들고 나와 화제였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느냐보다 성동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세 번이나 뽑아주신 덕에 공약을 95개 실천할 수 있었다.”
-첫 임기 때 가장 먼저 한 일이 구청 1층 로비를 도서관 겸 쉼터(책마루)로 만든 거더라.
“딱딱한 분위기의 관공서를 구민의 휴식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시위대가 로비를 점거하는 일이 종종 있다며 우려하는 직원도 있었지만 나는 우리 구민의 공공 의식을 믿었다. 폭염과 한파에는 24시간 개방해서 주무시고 가는 분들도 있다. 시위대 점거는 한 번도 없었다.”
-실천한 공약 중 가장 뿌듯한 건 뭔가?
“성동구 30년 숙원 사업이었던 ‘삼표 레미콘 공장 철거 프로젝트’다. 서울숲 한복판에 자리해 바람만 불면 시멘트 가루와 먼지가 날려서 인근 아파트에선 빨래를 널지 못했다. 삼표를 설득하고 이견을 좁혀 나간 끝에 구민들께 맑은 공기를 되돌려 드릴 수 있었다.”
-인도가 따로 없어 사고가 잦았던 금호역 앞 장터길 확장도 우여곡절 끝에 성사시켰던데.
“그 또한 30년 전 이세기 의원 시절부터 나온 공약이다. 도로를 넓히려면 상가 일부를 철거해야 해서 상인들이 결사 반대해 온 사업인데 욕먹을 각오, 계란 맞을 각오를 하고 상인들을 만났다. ‘대의’를 위해 양보해 달라는 읍소에도 끝까지 반대한 상인이 계셨는데, 개통식 날 저에게 오더니 ‘내가 졌습니다!’ 하고 악수해 주시더라(웃음).”
◇ 한국의 브루클린 성수
-폐공장 지대였던 성수동은 젊음의 성지가 됐다. 서울대 김경민 교수는 도시 재생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한다.
“성수동으로 이주해 온 ‘뉴 커머스’들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성수동은 한강의 기적을 일군 중공업 지역 중 한 곳인데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공장이 폐쇄되고 슬럼화됐다. 이곳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의 ‘창조도시론’을 읽었다. 과거에는 기업이 있는 곳에 사람이 왔지만, 지금은 사람이 모여드는 곳으로 기업이 온다고 하더라. 사람이 몰려오려면 그곳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 마침 젊은 예술가들, 소셜 벤처인들이 폐허가 된 공장 건물을 카페, 공방, 부티크, 갤러리로 변신시키고 있었다. 그들이 성수동 재생의 맹아였다.”
-직접 만났나?
“물론이다. 서울 다른 곳에서 활동하다 임차료가 오르자 성수동으로 쫓겨온 그들은 젠트리피케이션만 막아 주면 창의와 개성이 넘치는 거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때부터 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정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붉은 벽돌 건축물 지원 조례’도 그래서 나온 건가.
“패션 디자이너 지춘희 선생 아이디어다. 성수동의 붉은 벽돌 건축물이 매력적이니 꼭 보존하라고 하시더라. 오래된 벽돌 건물 중 보존 가치가 있는 건 살리고, 새로 짓는 건물의 외관을 붉은 벽돌로 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지원 조례를 만들었다.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한국의 브루클린’이라며 우리 MZ세대는 물론 외국 관광객까지 몰려왔다. 엔터테인먼트 그룹 SM을 필두로 무신사, 클리오, 아이아이컴바인드, 크래프톤에 이르기까지 기업들도 앞다퉈 둥지를 틀고 있다.”
-원주민들은 도시 재생보다 아파트 단지를 원하지 않았을까.
“아파트를 지어도 원주민의 재정착률은 30%가 안 된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대신 도시 재생이 성공하면 집값도 오르고 상권이 활성화된다고 설득했다. 다만 집값이 오르더라도 임대료는 올리지 말아 달라고 서명을 받았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이곳도 예외가 아닐 텐데.
“그래서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만들었다.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입점은 반드시 심사를 거치도록 제도화했고, 임차인·임대인 상생 협약을 통해 무분별한 임대료 상승을 막고 있다. 우리 조례는 2021년 국가가 제정한 ‘지역상권법’의 모태가 됐는데, 당시 환산보증금까지 폐지시키지 못한 것은 정말 아쉽다. 다시 국회에 올라가 있는 환산보증금 폐지 법안이 통과되면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유명 잡지 ‘타임아웃’이 지난해 성수동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네 4위’에 꼽았다.
“우리도 놀랐다. 붉은 벽돌 창고, 오래된 공장, 선적 컨테이너가 카페·부티크·갤러리로 변모한 ‘서울의 가장 창조적인 동네’라고 평했더라. 마르세유의 노트르담 뒤 몽, 카사블랑카의 메르스 술탄, 발리의 페레레난 다음 순위인데, 발표 후 미국과 유럽 관광객이 전체의 10%를 돌파했다.”
-실패한 박원순 시장의 도시 재생과는 어떻게 달랐을까.
“나는 ‘무조건 보존’은 교조적이라고 생각했다. 보존과 개발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도시 재생 지구와 리모델링 촉진 지구를 함께 지정한 이유다.”
◇ 서울시장? 덕담으로 듣는다
-집무실 한쪽 벽면을 다 채운 대형 전광판은 뭔가?
“성동구 현황을 24시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디지털 시스템이다. 공약 진행 속도를 비롯해 재정 상황, 교통 상황, 여론 동향까지 체크해준다. 범죄나 폭우·폭염·폭설 등 재난 상황에서는 경찰서·소방서와 실시간 공유하면서 신속히 대처한다.”
-거의 ‘빅 브라더’ 수준이다.
“구민들께서 사생활이 좀 침해를 받더라도 안전을 택하겠다고 결정해 주셨다. 동마다 주민이 주축이 된 선정위원회를 꾸리고 3년에 걸쳐 사각지대 곳곳에 고화질 CCTV를 설치했다.”
-성수동에 들어온 기업들과도 회의체를 꾸렸다고.
“도시의 역사성과 ‘팝업의 성지’라는 새 정체성을 동시에 유지하면서 쓰레기 등 환경 문제까지 해결하려면 기업과의 협업이 절실하다. 우리가 세제 혜택,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기업도 지속 가능한 도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댄다.”
-20대에 서울 양천구청장 비서실장으로 정치를 시작한 것이 도움이 됐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지역 행정의 효능감과 보람을 그때 체감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도 8년 일했더라. 동료 보좌관 출신 진성준 등 여럿은 의원 뱃지를 달았다.
“정치의 목적은 국민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내겐 구청장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국회는 과반 이상이 동의하지 않으면 법 하나도 만들 수 없는데, 정책 결정 권한이 있는 지자체장은 혼자 열심히만 해도 당장의 성과를 거둘 수 있으니까(웃음).”
-지자체장 3연임이면 스캔들도 한 번 터질 법한데.
“여의도 있을 때 패가망신하시는 분들을 많이 봐서(웃음).”
-586 운동권 출신이지만 진영을 아우른 지지를 받더라. 극단의 대립을 이어가는 여의도 정치권에 한말씀.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마지막 수단이지, 유일한 수단이 아니다. 다수결 이전에 반대편 사람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중하고 경청하면서 최선의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소수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정치, 나를 죽이겠다고 덤벼드는 사람마저도 이해시키려는 정치가 절실하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도 꼽힌다.
“덕담으로 듣고 있다. 야구로 치면 7회 말이나 8회 초에 와 있는데 엉뚱한 일로 방심하다간 역전 홈런을 맞을 수 있다(웃음). 9회쯤 다음 게임을 생각해 보겠다.”
☞정원오
1968년 전남 여수 출생.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시절 5·18 항쟁을 다룬 영화를 본 뒤 운동권에 투신, 전대협,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등에서 활동했다. 군 제대 후 26세에 서울 양천구청장 양재호 비서실장으로 정치에 입문, 임종석 국회의원 보좌관을 거쳐 민선 6·7·8기 성동구청장에 당선됐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 필수 노동자 지원 조례 등을 만들어 전국으로 확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