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영 숙명여대 석좌교수·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

산업과 사회가 통째로 재편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모든 분야에서 게임 룰을 바꾸고 있다. 이 전환 시대에 대한민국이 지속적으로 번영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단연 ‘인재 양성’이다. 그렇다면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가 길러야 할 인재는 누구인가? 단지 기술을 잘 다루는 사람인가, 아니면 기술 너머 세상을 상상하고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인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절실했던 인재는 선진국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고 응용하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형이었다. 이들은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에서 대한민국을 세계적 산업 강국으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추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제는 ‘진정한’ ‘퍼스트 무버(first mover)’형 인재가 필요한 시점이다.

진정한 퍼스트 무버는 단지 기술을 먼저 개발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라는 문명적 비전을 먼저 품고, 그 비전을 실현할 기술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기술력과 창의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술을 넘어서는 통찰력, 다시 말해 ‘인문학적 문명관’이 필수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퍼스트 무버와 패스트 팔로어를 자주 혼동한다는 점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곧잘 “외국에서는 하고 있나?” “외국에서 안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외국 사례가 없으면 시도조차 꺼리는 문화다. 말로는 퍼스트 무버를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가장 빠른 추격자(fastest follower)’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퍼스트 무버는 먼저 새로운 세상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상상을 실현할 기술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인터넷이 없던 시절 누군가가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세상’을 꿈꾸었다고 해보자. 그 문명적 비전이 있었기에 인터넷이라는 기술 개념이 태어났고, 이후 통신 기술과 광섬유, 고속 데이터 전송 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다.

공학자는 기술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퍼스트 무버형 공학자는 기술을 넘어 새로운 문명까지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인문학은 공학의 윤리를 세우고 기술 방향을 잡아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엇을 위한 기술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하게 해준다.

물론 지금도 대학에서는 공학도에게 인문학 과목을 수강하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윤리 교육이나 창의성 고취 같은 ‘소양’ 수준에 머무른다. 이제는 그 좁은 범위를 넘어야 한다. 인문학을 통해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본질을 통찰하고, 기술이 지향해야 할 문명을 먼저 상상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중진국에 머무를 것인가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떤 문명을 향한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세계 최초’ 기술을 개발하고도 ‘진짜 변화’는 만들지 못하는 나라에 머무를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기술 너머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인재다. 바꿔 말해 인문학적 문명관을 품은 공학자. 그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진정한 퍼스트 무버의 길로 이끌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인재를 길러내려는 근본적 교육 혁신이 없다면, 우리는 이번에도 결국 말뿐인 혁신에 머물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