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계 의장은 "한중 간 조선 기술 격차는 거의 사라졌다"면서 "마스가 프로젝트는 미국 AI 기업과 협업 체계를 구축해 한국 조선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말한다./김지호 기자

미·중 패권 전쟁에서 미국이 우위를 점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조선이다. 미국은 조선 산업에서 이미 경쟁력을 잃었기에, 동맹국인 한국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과의 벼랑 끝 관세 협상에서 한국의 협상력을 결정적으로 높여준 요소가 한국이 제안한 ‘마스가(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이다. 앞으로 1500억달러(약 200조원)를 투자해 미국 내 조선소 건설, 인력 양성, 미 군함 유지·보수·정비(MRO) 등을 한국이 돕겠다는 것이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잘 굴러갈까. 한국 조선업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 조선업계 동향을 잘 아는 신종계(70)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 교수를 만나 질문을 던졌다. 그는 세계 조선업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제조선전문위원회(CESS) 의장을 맡고 있다.

◇미국 각성시킨 우크라이나전쟁

-중국의 조선 굴기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미국은 그동안 방관했던 건가, 해법을 못 찾아서 헤맸던 건가?

“미국 조선업 경쟁력 저하를 야기한 존스법(Jones Act·미국 연안을 운항하는 선박은 반드시 미국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법)을 없애자, 안 된다 옥신각신 논쟁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해 왔다. 그러다 트럼프 1기 때도 조선업 부흥 계획을 세웠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잘 안 됐다. 2~3년 사이에 분위기가 확 바뀌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게 두 개의 전선에서 벌어졌을 때 해상 물류망이나 해군력이 감당되겠나 하는 식의 문제의식을 갖게 된 건가?

“이 주제로 미국 교수들과 논의한 적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을 보면 유럽 전선은 육군의 전쟁이고, 아시아 전선은 해군의 전쟁이었다. 바다 전쟁의 핵심은 해상로, 배, 항구다. 그런데 누군가 이 핵심 3요소의 미국 경쟁력을 점검해 보니까 ‘아 이거 큰일 났구나’ 싶었던 거다. 상황을 리뷰(재점검)하고 경쟁국 중국을 벤치마킹해보니, 결국 선박 생산을 잘하는 게 핵심이라는 걸 자각했다고 추정한다.”

◇1950년대 미·일 간 상선 건조 협업

-조선업 부흥에 한국 같은 동맹국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

“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미국이 국제 무역을 주도할 때, 대형 상선이 부족했다. 미국이 전쟁 중 군함과 수송선을 엄청 찍어냈지만 조선소 독(dock)은 대개 군함용이고, 대형 상선을 만드는 독은 부족했다. 그래서 미국이 찾은 해법이 일본 조선과의 협업 모델이었다. 2차 대전 중 일본은 항공모함 등 초대형 군함을 만들기 위해 대형 독이 있는 조선소를 여러 곳 운영했었다. 1950~60년대에 미국이 일본 조선소를 빌려서 대형 상선을 만들었다. 미국이 조선 엔지니어를 일본 조선소에 보내 당시 조선 신기술을 전수해주며, 대형 상선을 만들어 미국으로 가져왔다. 이런 동맹국 협업 모델을 재현하면 미국 조선업의 빈 구멍을 빠르게 메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일본은 미국 기술 흡수 덕에 수십 년 간 세계 조선 산업을 지배할 수 있었다. 미쓰비시, 히타치, 가와사키 등 전후 일본에서 잘나갔던 기업들은 모두 조선소를 갖고 있었다. 일본 조선업이 전후 경제 부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미국 및 동맹국의 산업계와 정부 관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뷰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 미국 선박 MRO(수리 및 유지보수) 위탁, 동맹국의 미국 조선소 인수, 동맹국과 군함 공동 생산, 동맹국 조선소에서 건조된 함정 구매 등 4가지 시나리오가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했는데.

“미국이 제일 급하게 생각하는 1순위는 함정이다. 함정 MRO(시장 규모 연 20조원)를 가장 급한 과제로 생각할 것이다.”

◇미 군함 건조, 과도한 기대는 금물

-미국이 군함 신조(新造)도 한국에 맡길 가능성이 있나?

“과도한 기대가 될 수도 있다. 군함 건조 역량과 시설 용량은 우리나라보다 유럽 선진국이 더 우월하다. 영국 BAE시스템스, 스페인 나반티아,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프랑스 나발 그룹, 독일 티센크루프가 그런 기업들이다. 다만 현재 미국은 반스-톨레프슨 수정법(군함 주요 선체, 구성품은 미국에서 만들도록 규정한 법)에 의해 군함은 자국 조선소가 만들도록 돼 있다. 만약 미국이 규제를 풀고 외국에 군함 제조를 맡기겠다고 하고, 국제 입찰에 나설 때 유럽 군함 제조사들이 주문을 선점할 수도 있다. 그동안 미국이 찾은 대안이 오크스(AUKUS·미국·영국·호주 간 3자 안보 파트너십) 체제를 구축해 호주 조선소에 미 군함 제작을 맡기는 것인데, 아시아판 오크스 체제를 만들어 미 군함 제조 물량을 한국, 일본에 주는 모델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함정 선진국들과 경쟁할 가능성이 크지만, 경우에 따라선 협력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

-국내 조선사는 3~4년 치 일감이 밀려있는데 추가 주문을 받을 수 있나. 조선업 구조조정 때 문 닫은 조선소를 다시 살려 미국 배를 만들어 줄 수도 있나?

“돈이 된다면 당연히 할 거다. 고용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런 건 빠르게 시행할 수 있는 단기적 사업이고, 우리는 좀 더 중요하고 장기적인 걸 준비할 필요가 있다.”

-무슨 말인가?

“1500억달러 선박 펀드를 미국 조선업 생태계 부활에 쓴다지만, 그 돈을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 향상에도 쓸 수 있게 만드는 전략을 국가 차원에서 수립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고급 인력 양성과 미래 조선업 경쟁력을 좌우할 스마트 조선, 스마트 선박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재원으로 쓰는 것이다. 고급 선박 엔지니어 육성을 위한 한·미 간 협력 사업은 이미 틀을 짜놓았다. 미국 MIT, 미시간 대학, 해군 사관학교와 한국 대학 조선공학과 간 공동 커리큘럼과 한국 조선소 현장 실습 기회 제공 프로그램이 대표적 사례이다. 한국의 조선 기능 인력 양성 시스템을 미국에 가져가 미국 조선소에 일할 외국인 노동자를 교육하는 방법도 있다.”

그래픽=김현국

◇마스가에 미국 AI 기술 접목해야

-스마트 조선소, 스마트 선박이 왜 필요한가?

“한국 조선업이 세계 1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계속 발전해 가야 된다. 우리에게도 부족한 게 많다. 노동 인력이 부족해 생산 공정을 자동화·로봇화해야 하는 과제가 있고, 선박 제조 공정에 인공지능(AI)을 이식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과제도 있다. 그래서 미국과의 협업 프로젝트에 100을 투자한다면 한국 조선 산업 업그레이드 분야에도 100을 투자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발전해가면서 도와야지 한미 간 조선 동맹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조선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긴 호흡의 빅 픽처를 우리도 그려야 한다는 얘긴가?

“그 역할을 정부가 해줘야 한다. 정부가 정책으로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조선 정책에는 산업, 기자재, 기술, 인력 양성, 공급망, 연구개발 등 조선 산업에 필요한 모든 내용이 빠짐없이 들어가야 한다.”

◇중국 추격 따돌리려면

-중국의 조선 산업은 현재 어느 수준까지 와 있나. 컨테이너, 유조선은 이미 따라잡혔고, LNG 수송선도 기술 격차가 없어졌다는 진단이 맞나?

“최근 중국 조선소를 둘러보고 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한중 간 기술 격차는 사라졌다, 어떤 분야는 중국이 앞서 있다고 말한다.”

-중국 조선업 급성장 비결이 뭔가?

“자국 선박 수요가 워낙 많으니까 선박 건조 실적을 빠르게 쌓았고, 돈과 인력도 풍부하니까 빠르게 우리를 추격할 수 있었다. 중국 모 대학에서는 조선공학과 입학생 200명 중 상위 20%인 40명은 특별 교육 프로그램에 넣어 고급 엔지니어 자원으로 키우고 있다. 이런 차별화된 인재 육성 프로그램도 중국 조선업 발전에 일조했을 것이다. 한국 조선산업 구조조정 때 직장을 잃은 한국인 엔지니어들도 많이 활용했을 것이다.”

-마스가 프로그램을 우리 국익 극대화 수단으로 활용하려면?

“미국은 AI와 소프트웨어,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나라다. HD현대의 사례처럼 AI를 활용해 생산 공정의 최적화 등을 돕는 팔란티어 같은 기업과 협력하면 스마트 조선소, 스마트 선박의 구현을 앞당길 수 있다. 이번에 미국과의 협업 모델을 잘 구축하면 한국 조선 산업이 앞으로도 50년간 세계 조선 시장을 선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조선업에 큰 기회의 창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신종계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한 후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 MIT 대학에 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두꺼운 철판으로 만드는 선박의 곡면 가공을 자동화·디지털화하고, 복잡다단한 조선소의 물류 및 정보 흐름을 체계적으로 모델링하는 새 방법론을 개발했다. 미국 조선학회가 선박 생산 분야 최고 논문에 주는 ‘엘머 한(Elmer L. Hann)’상을 세 차례나 받았다. 이 상을 세 번 받은 사람은 신 의장이 유일하다. 그는 2019년 첫 조선해양산업발전협의회장을 지냈다. 2023년 한국인 최초로 글로벌 조선업계 대표 단체인 국제조선전문위원회(CESS) 의장에 선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