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1997년 영화 ‘가타카(GATTACA)’는 구약성서 전도서 7장 13절로 시작한다. 제목인 가타카는 유전자(DNA)를 구성하는 G(구아닌), A(아데닌), T(티민), C(사이토신) 등 네 가지 핵염기를 조합해 만들었다. 영화에서는 성경에 쓰인 신과 자연의 섭리 대신 부모가 자녀의 지능과 외모를 선택하고, 그에 따라 신분과 직업까지 결정되는 세상이 펼쳐진다.
가타카가 그린 미래가 현실화되고 있다. 파키스탄 이민자 누어 시디키가 창업한 바이오 스타트업 오키드헬스는 체외 수정(IVF)한 배아에서 세포 5개만 사용해 유전자 질환 1200가지 이상을 검사한다고 홍보한다. 태어날 아이가 어떤 질병에 걸릴지 미리 알고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허황돼 보이지만 과학적 근거가 있다. 하버드대 연구팀은 2018년 ‘네이처 제네틱스’ 논문에서 관상동맥 질환, 당뇨병, 유방암, 알츠하이머 등 주요 질병을 유전자 분석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리콘밸리는 오키드헬스에 열광한다. 창업 자금은 페이팔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이 냈고 이더리움 창립자 비탈릭 부테린, 코인베이스 창업자 브라이언 암스트롱 같은 거물들이 투자했다. 시디키의 창업 동기 역시 ‘실리콘밸리식 서사’를 갖췄다. 시디키는 “어머니가 유전 질환인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을 잃는 것을 보고 오키드헬스의 미래를 떠올렸다”고 했다.
아이 디자인 과정은 이렇다. 체외 수정한 배아들에서 세포를 얻어 유전자 증폭으로 전체 유전자 변이를 확인한다. 배아를 제공한 부모에게 각 변이가 가진 질병의 상관 관계 및 확률을 보여준 뒤 어느 배아를 착상할지 고르게 한다. “2번 배아는 청력 상실 유전자 변이가 있고, 3번 배아는 비만 위험이 높다. 4번 배아는 양극성 장애 발병 위험이 일반인 절반이지만, 당뇨병 발병 위험이 두 배이다” 같은 식이다. 배아 하나당 검사 가격은 2500달러(약 350만원)가량. 2023년 첫 오키드헬스 아이가 태어났고, 현재는 미국 100곳의 시험관 시술소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일론 머스크와 네 아이를 낳은 시본 질리스도 고객이다. 디 인포메이션은 “머스크 자녀 14명 가운데 최소 한 명은 오키드헬스 아이”라고 했다.
더 공격적인 경쟁사도 있다. 뉴욕 스타트업 뉴클리어스는 5999달러를 내면 질환 900가지에 대한 배아 검사는 물론 지능지수·키·눈동자 색까지 알려준다. 왼손잡이를 구별할 수 있고, 탈모나 여드름이 생기지 않는 유전자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창업자 키안 사데기는 “모든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이 가졌던 것보다 많은 것을 주고 싶어한다”고 유혹한다.
과학계는 이들이 과장 광고를 한다고 지적한다. 극소수 세포에서 유전자를 증폭하면 오류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잘못된 정보가 배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유전자 변이가 확률일 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전체 유방암 발병 가운데 선천적인 ‘BRCA1/2’ 유전자 변이로 인한 경우는 25%에 불과하다. 유전자 변이가 없는 배아를 선택해도 유방암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 유전자 변이가 있다고 꼭 질병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일부 과학자는 이들이 피 한 방울로 질병 250가지를 검사할 수 있다는 거짓말로 투자금을 모은 실리콘밸리 최악 사기꾼 엘리자베스 홈스와 다를 바 없다고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윤리적 문제이다. 자녀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부모 역시 자녀를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절대적 진리였다. 하지만 오키드헬스와 뉴클리어스는 이를 뒤흔들고 있다. 이들은 ‘질병에서 해방’을 외치지만, 기업과 부모의 욕심이 질병 예방에 만족할 리 없다. 원하는 아이만 낳는 세상이 홀로코스트를 일으킨 히틀러와 나치가 꿈꾼 우생학(優生學) 세상과 무엇이 다를까. 과학기술의 발전이 만든 디스토피아를 그린 다른 영화가 있다. 1993년 ‘쥬라기 공원’에서 이언 말콤 박사는 6500만년 전 공룡을 현대에 부활시킨 인젠 창업자 존 해먼드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네 과학자들은 ‘할 수 있는가’만 생각하고, ‘해야 하는가’는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든 쥬라기 공원이 어떻게 됐는지 모두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