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불법 대북 송금’ 사건 1심 재판을 맡고 있는 수원지법 형사11부가 지난 22일 재판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했다. 재판장은 “대통령으로서 국정 운영의 계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공판기일을 추후 지정하겠다”고 했다. 추후 지정은 재판 일정을 바로 잡지 않고 나중에 정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내란 등을 제외하면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84조를 고려한 판단이다. 소추에 ‘진행 중인 재판’도 포함되느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포함된다고 본 것이다. 앞서 법원은 이 대통령의 대장동·위증교사·법인카드 유용·선거법 위반 등 4개 재판도 같은 이유로 연기했다. 이 대통령의 5개 재판이 모두 멈춘 것이다.
이제 관심은 이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5년 뒤 재판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느냐로 쏠릴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여야 지도부와 오찬 회동을 가졌을 때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재판을 받겠다는 것을 약속해 달라”는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의 요구에 답하지 않았다. 회동이 비공개로 전환된 뒤 이와 관련한 논의가 더 이뤄지지 않았고, 이 대통령도 그냥 넘겨 버렸다고 한다.
이 문제는 이 대통령의 ‘약속’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대통령 임기 중 재판을 연기한 법원의 ‘한시 조치’가 끝나면 법정에 다시 서야 한다. 법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당시 김 비대위원장이 재판받겠다는 약속을 요구한 것은 5년 뒤 재판이 제대로 이뤄지겠느냐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법조계 인사들 중에도 그런 우려를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검찰이 5년 뒤에도 이 대통령의 유죄를 이끌어내기 위한 공소 유지를 지금처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가 다 “조작”이고 “소설”이라고 했다. 이 주장을 깨려면 무엇보다 사건을 가장 잘 아는 수사 검사들이 5년 뒤에도 검찰에 남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검사들에 대한 최종 인사권자는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이 자신의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을 한직으로 날리면 검사들이 버티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런 일은 역대 정권에서 여러 차례 벌어졌고 문재인 정권 때 특히 심했다. 문 전 대통령이 과거에 쓴 책에는 “검찰 간부는 해마다 보직 인사를 받는데 두 번만 한직으로 발령 나면 회생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는 실제로 그 방식을 그대로 썼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을 검찰이 수사할 때는 인사권을 이용해 수사팀을 공중분해시키기도 했다.
그래도 “검사들이 버티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이재명 정부는 이미 다른 ‘장치’도 마련해 뒀다. 지난달 5일 이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특검법과 함께 통과시킨 ‘검사 징계법 개정안’이다. 종전엔 검찰총장이 검사 징계를 청구하면 법무부 장관이 위원장인 검사 징계위원회에서 징계 여부를 심의·의결했지만, 장관에게도 징계 청구 권한까지 준 것이다. 판사 역할만 하던 법무 장관에게 검사도 겸하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법조계 내부에선 이 대통령 사건 수사 검사들을 징계하기 위한 포석이란 분석이 많다. 고검장 출신 변호사도 “일단 이 대통령 사건 수사 검사들을 한직으로 발령 내고 그래도 버티면 징계 권한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검사 파면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검사에 대한 최고 수준의 징계는 해임이고, 검사는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으면 파면할 수 없게 돼 있다. 검찰 수사 독립을 위해 신분 보장 장치를 둔 것인데 자체 징계만으로 파면이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검사들을 인사로 불이익 주고, 그래도 버티면 징계하고, 막판에 파면할 수 있는 길까지 열어두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검사들이 공소 유지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수사했던 사건도 아닌데 5년이나 지난 전직 대통령 사건을 검사들이 열의를 갖고 재판에 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 부장검사는 “검사는 자기가 수사한 사건엔 집념이 있지만 다른 검사가 수사한 사건은 신경을 덜 쓰게 된다”며 “다른 검사들이 나중에 공소 유지하면 이 대통령 재판은 사실상 방치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이 대통령 재판이 5년간 중단되지만 공범들의 재판은 그 사이에도 진행된다는 것이다. 대장동 사건으로 함께 기소된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불법 대북 송금 사건에서 제3자 뇌물 혐의 공범으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 등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취임과 동시에 “다른 검찰청 사건 공소 유지를 위해 파견된 직무대리 검사에 대해 원대 복귀를 검토하라”는 ‘1호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동안 검찰은 중요 사건의 경우 수사 검사가 타지로 전보된 후에도 직무대리 발령을 내려 직접 재판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이 대통령 사건에도 일부 수사 검사들이 직무대리로 재판에 참여했다. 그 상황에서 수사 검사들의 직무대리 발령을 막으면 이 대통령 사건 공범들의 재판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5년 뒤 열릴 이 대통령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정 장관은 이 대통령 사건 수사 검사들에 대해 “징계를 하거나 정치적 압박을 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자신의 사건을 다 “조작”이라고 한 상황에서 정 장관 생각대로 될지는 불투명하다. 실제 이 대통령 사건을 지휘했던 검찰 고위 간부들이 최근 검사장급 인사를 앞두고 잇따라 사의를 표명했다. 정권의 퇴진 압박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인사를 통해 수사 검사들에게도 어떤 압박과 불이익을 가하는지를 보면 이 대통령의 5년 뒤 재판 모습이 대충 그려질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하면 정권도 타격 입을 것”
이재명 대통령의 5년 뒤 재판을 불투명하게 하는 또 다른 상황은 ‘공소(公訴) 취소’ 가능성이다. 민주당은 이미 ‘대장동’ ‘불법 대북 송금’ 등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이 조작됐다고 규정했고, 김병기 원내대표는 검찰을 향해 “공소를 취소해야 한다”고 했다. 검사가 공소를 취소하면 재판은 공소기각 결정으로 끝난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가능성은 세 가지다. 우선 검사가 스스로 공소를 취소하는 경우다. 공소 취소는 검사 재량이고, 법률상 취소 사유가 정해져 있지도 않다. 하지만 이제껏 공소 취소는 살인 혐의자를 기소했는데 진범이 잡히거나 명백한 증거 조작이 밝혀진 경우 등 극히 예외적으로 이뤄졌다. 불법 대북 송금에 관여한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는 이미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사건이 조작됐다는 민주당 주장은 근거가 거의 없다. 이 상황에서 ‘정상적’인 검사라면 스스로 공소를 취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장관이나 정권 실세가 검사를 몰래 압박해 공소를 취소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직권남용죄에 해당할 수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법무부 장관이 정식으로 수사 지휘권을 발동해 공소 취소를 지시하는 것이다.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통해 지휘할 수 있게 돼 있다.
정성호 법무부장관은 장관 지명 전인 지난달 25일 한 포럼 강연에서 “국민이 재판이 진행 중인 걸 알고 대통령을 선택했다”며 “공소 취소가 맞다”고 했다. 하지만 장관이 공소 취소 지시를 내린다면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 장관 지시엔 이 대통령 의중이 실렸다고 볼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이 대통령이 ‘셀프 사면’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그런 상황이 되면 정권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정 장관은 입장을 바꿨다. 인사 청문회에서, 이 대통령 사건에 대해 공소 취소를 지시할 것이냐는 물음에 “정치적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구체적 사건에 대해 (공소 취소를) 지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전 발언에 대해선 “정치인 입장에서 주장을 말씀드렸다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 장관은 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다. 민주당이 지속적으로 공소 취소를 압박하고, 대통령실이 동조하면 입장이 다시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