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보수 정당이 네 번째 위기 터널로 진입한 것일까. 위기는 전국 단위 선거 연속 패배다. 1차 위기는 1997년 대선과 1998년 지방선거 연속 패배, 2차 위기는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연속 패배, 3차 위기는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연속 패배다.

2024년 총선 패배 후 국민의힘은 어느 길을 갈까. 2026년 지방선거에서 반격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연속 패배로 네 번째 위기 국면으로 들어갈까. 예후는 좋지 않다. ①3연속 총선 패배 ②집권당 사상 최대 패배 ③두 번 연속 100~110석으로 간신히 개헌·탄핵 저지 의석 확보 ④8년 사이에 네 번 당명(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 변경 ⑤‘통제할 수 없는 상수’인 대통령으로 인한 위기 ⑥수도권 경쟁력 상실과 영남당 전락 ⑦65세 이상에서만 우세한 정당으로 세대 고립.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위기의식이 전혀 없다. ①위기에 동의하는가? ②원인은 무엇인가? ③해결책은 무엇인가? 이 프로세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위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한 발도 나갈 수 없다. 박수영 의원은 페이스북에 “참패는 했지만 의석은 5석이 늘었고 득표율 격차는 5.4%로 줄었다”며 “뚜벅뚜벅 전략, 또는 가랑비 전략으로 3%만 가져오면 대선에서 이긴다”고 낙관했다. 충격적 인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국회의원 오찬'에서 인사하고 있다. 이날 오찬은 22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낙천·낙선자를 격려하기 위해 마련됐다. /대통령실

박 의원은 “4년 전에도 그랬다. 당시 의석은 103석으로 많이 뒤졌지만, 득표율은 8.5%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고 4.5%만 가져오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통적 보수는 총동원된 상황이라 중도에서 4.5%를 가져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싹 바꾸기보다는 의정 활동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고 썼는데 2022년 대선 승리는 ‘의정 활동에 충실’해서 이긴 게 아니라 김종인 비대위·이준석 대표 체제에서 ‘싹 바꿔서’ 재집권한 것이다.

서울 노원에서 낙선한 후 대구로 내려가 대구시장을 지내고 이번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권영진은 윤상현 의원이 “당이 영남 중심이다 보니 공천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당 지도부나 대통령에게 바른 소리를 전달 못 하는 것”이라고 한 발언을 겨냥해 “물에 빠져 익사 직전 당을 구해준 영남 국민에게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고 한술 더 떠 물에 빠진 책임까지 지라는 건 너무 옹졸하고 모욕적”이라고 반박했다. ‘영남 의원에 대한 비판’을 ‘영남 국민에 대한 비판’으로 슬쩍 바꿔 놓았다.

송파을에서 재선한 배현진 의원은 지난 16일 당선인 총회에 참석한 후 기자들에게 “오늘은 축하해야 하는 자리”라고 했는데 19일 낙선자 모임에서 이 발언을 두고 “당선인 모임에서 희희낙락, 하하호호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담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이야 지든 말든 나만 당선되면 된다는 말인가. 낙선자 대부분도 영남과 강남에서 출마했다면 당선됐을 것이다. 당선자 대부분도 수도권 험지에서 출마했다면 떨어졌을 것이다.

가장 놀라운 뉴스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임명과 이철규 원내대표설(說)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비대위원장 시절 ‘100% 당원 투표’ 관철로 당을 민심에서 멀어지게 만든 책임이 크다. ‘친윤’ 당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한 사람이 비서실장이 됐는데 윤석열 대통령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국민의힘·국민의미래 당선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뉴스1

이철규 원내대표설은 국민의힘이 얼마나 민심에 역행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책임으로 당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직후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은 그가 총선 참패 후 원내대표가 된다면 패배에 책임 있는 사람에게 벌 대신 상을 주는 격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장제원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추천하고 당대표는 100% 당원 투표로 뽑는 게 맞는다고 주장했다. 모두 당보다 개인이 우선이다. 총선 참패의 원인인 ‘수직적 당·정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팀 국민의힘’은 죽었다.

1차 위기와 2차 위기는 당시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이회창과 박근혜의 혁신으로 극복했다. 2000년 총선에서 이회창 총재는 오세훈·원희룡을 당 텃밭인 강남을과 양천갑에 공천했다. 젊은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에도 공간을 내줬다.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비주류인 홍준표 의원에게 혁신위원장을 맡겼다. 홍준표 혁신안은 ①대선 1년 6개월 전 당권·대권 분리 ②공직 선거 후보 공천 시 일반 국민 의사 50% 반영이 핵심이었다. 특히 당권·대권 조기 분리를 박근혜 대표가 대승적으로 받아들였다. 박근혜는 그 혁신안으로 2007년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에게 패했지만 당은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을 압승했다.

국민의힘 윤재옥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와 당선인들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2대 국회의원 당선자총회에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2020년 총선 패배 후에 온 3차 위기는 민주당 비대위원장으로 새누리당에 패배를 안긴 김종인에게 1년간 비대위원장을 맡긴 결과 2021년 4·7 재보선에서 승리하면서 극복했다. 이후 치른 전당대회는 30대 이준석을 대표로 뽑을 정도로 절박했다. 지금은 그런 리더십도 없고, 절박감도 없다. 혁신이 어려운 이유다.

1~3차 위기를 되돌아보면 예외 없이 재보선에서 반격을 시작했다. 가장 최근도 2021년 4·7 재보선이 변곡점이었다. 국민의힘이 1년 뒤인 2025년 재보선에서 반격하려면 이번 전당대회에서 적어도 패배에 책임이 큰 ‘친윤’ 색채를 빼고, 최소한 민심을 50% 이상 반영하고, ‘집단지도체제’로 대통령에게 맞서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2026년 지방선거도 패하면서 과거보다 더 깊고 어두운 4차 위기가 현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