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67회 ‘신문의 날’이다. 신문의 날은 1896년 4월 7일 창간한 <독립신문> 61주년을 기해 1957년 이날 신문의 사명과 책임을 자각하고 자유와 품위 등을 강조하기 위하여 언론인 스스로 제정했다. 해마다 이날이 다가오면 다음 두 말씀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이 늙은이가 당부하고 싶은 말은 고기 없는 소에서 물을 퍼내는 수고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흙덩이를 쫓는 개가 되지 말고, 흙덩이를 던지는 놈을 물어뜯는 사자가 되십시오.”(2002년 8월 17일 조오현 당시 백담사 회주스님 한국기자협회 창립 38돌 축사)
“저희 카자흐스탄 기자들 사이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한줄의 진실을 찾기 위해 우리는 사흘 밤낮을 걸었다’ 건배!”(2002년 11월 11일 제1회 재외동포기자대회 참석 카자흐스탄 <고려일보> 김성조 편집국장의 청와대 간담회 건배사)
우리는 이처럼 본질을 냉철히 꿰뚫고 또 그를 뒷받침하는 팩트를 전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왔다. 그렇게 탄생한 콘텐츠들은 신문의 한 단, 한 면을 장식하며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했다.
그후 21년이 지나는 동안 신문을 둘러싼 환경은 말 그대로 변화무쌍했다. ‘신문의 위기’라는 의구심은 ‘신문의 미래는 더 이상 없다’라는 냉소까지 이르렀다.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이 탄생할 때마다 신문의 위상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위기를 조성하는 주체 중 하나였던 TV는 어느새 고전 취급을 받을 정도로 세상은 빠르게 변해왔다. 포털과 유튜브, 그리고 최근 챗GPT까지 어느 하나 만만한 도전자가 없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신문의 위기를 초래하는 미디어 플랫폼들이 신문이 그동안 쌓아 올린 콘텐츠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확장될 수 있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신문 속에 영원히 기록될 단 하나의 문장을 위해 수많은 땀과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플랫폼’의 연이은 등장으로 말미암은 ‘신문의 위기’를 논하기 이전에 우리 고유의 영역인 ‘콘텐츠’라는 가치를 지키고 있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이슈의 본질과 팩트를 정확히 파악하고 혼연의 힘을 다해 만드는 콘텐츠, 신문이 아니면 그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런 자부심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신문인들이여, 더 이상 낙담하지 말자. ‘플랫폼’이라는 끊임없는 도전자들에 흔들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만이 전할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다. 본연의 가치를 간직한 채 혼신의 힘을 다할 때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