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나를 시집 못 간 폐물 취급하지만 나는 거울 속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아주 그냥 이뻐 죽겠다. 직업 있겠다, 돈 벌어 방세 제때 내겠다, 인물도 이만하면 준수하지 아니한가! 엉덩이가 축 처졌다는 점이 다소 아쉽기는 해도 제까짓 게 아무리 내려와 봤자 오금까지 닿을 리 없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나 잘났소’ 하는 태도는 일할 때도 변함없다.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나만큼 성실한 일꾼은 또 없을 거라며 온갖 거만을 다 떤다. 그러나 결국에는 잘난 체를 숨기는 데 실패하고야 말았다. 나 역시 당신만큼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노는 사람 취급하지 말아 달라는 동료의 직언을 들었으니 말이다. 이심전심이 쓸데없이 잘되는군, 씨부렁거린 것도 잠시. 곧이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와 함께 일하며 나를 아니꼽게 여긴 사람이 비단 이이뿐일까?
교만을 버리려면 백팔 배를 하라는 어느 스님의 조언이 떠올랐다. 두 사람이 자리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가 의견 차이가 나면 일어나 앉고, 앉아서 옥신각신하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일어서고, 일어서서 티격태격하다가 성질이 나면 고개를 쳐들고 눈을 치뜬 채 소리소리 지르지 않느냐고. 그러다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스치면 눈부터 내리깔고 고개를 숙인 다음 허리를 굽혀 사과하는데 그걸로도 부족하다 싶으면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며 용서를 구하지 않느냐고. 이것이 바로 사람 성질이란다. 억지로라도 몸을 굽히면 마음도 따라 굽혀질 터이니 절을 해보라는 말씀이었다. 속는 셈 치고 백팔 배를 시작했다. 기도문을 외면 더욱 좋다기에 ‘나만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겠습니다’ 거듭 읊조리며 정성을 다했으나, 절이 끝나갈 무렵이면 넋이 빠져서는 ‘엉덩이라도 탱탱해져라!’ 따위의 헛소리를 되는 대로 지껄이곤 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백팔 배를 했지만 불량한 기도문을 외운 탓인지 효험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또 다른 동료를 향한 불만을 품은 것만으로도 모자라 속으로 떠죽이던 소리를 그의 면전에 쏟아내기까지 했다.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러나 화를 분출한 빈자리에 후회가 금세 차올랐다. 그러고는 그에게 사죄하기 전까지 절대로 사라지지 않겠다는 기세로 마음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문자메시지 창에 ‘제가 너무’라고 썼다가 지웠다. ‘죄송해요’라고 썼다가 또 지웠다. ‘저 때문에’라고 썼다가 다시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을 망설인 끝에 ‘제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던 것 같아요. 저 때문에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해요’라는 문장을 완성하고는 전송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괜찮아요.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그의 문자메시지를 읽는 내리깐 눈에서 눈물이 찔끔 흘러내렸다.
이것이 백팔 배 덕에 흘린 참회의 눈물인지, 자존심이 상해서 흘린 쪽팔림의 눈물인지, 나로서는 분간할 길 없다. 그럼에도 전자라 믿으려 하는 이유는, 저만치 내려가 있던 엉덩이가 반복적인 굴신 운동을 통해 살짝이나마 올라붙은 모습을 보아하니 내 마음도 몸을 따라 조금이나마 변화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오늘도 허리 굽혀 절을 한다. 절 한 배에 저만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겠습니다. 절 두 배에 화를 냈던 모든 이에게 사죄합니다. 절 세 배에 아니 그나저나 ‘나 역시 당신만큼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노는 사람 취급하지 말아 달라’고 쏘아붙였던 그 인간은 놀다가 들켜서 발끈했던 거 아니야? 에구머니, 이게 웬 번뇌 망상이람. 허리를 더욱 깊게 숙이고 이마를 바닥에 묻는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