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기보다는 방에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이 좁다란 공간은 상황에 따라 서재가 됐다가 거실이 됐다가 침실이 되기도 한다. 욕심 같아선 번듯한 가구를 들여놓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그 사이에 끼여 사는 꼴을 면치 못할 터. 그리하여 책장이 따로 필요 없는 전자책을 읽고, 개어 놓은 이불을 소파 삼아 앉으며, 밤이 되면 그 이불을 펴서 잠자리를 마련하는 식으로 어찌어찌 지내는 중이다. 이렇게 다용도로 활용 가능한 방이지만 주방으로까지 사용하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따른다. 사야 할 주방용품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이 첫째 이유요,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구조라는 점이 둘째 이유요, 요리 따위 하기 싫어 죽겠다는 점이 셋째 이유다. 고심 끝에 화식을 포기했다. 물에 불린 현미와 익히지 않은 야채가 맛있을 리 만무하지만 ‘나는 자연인이다!’ 주문을 외며 씹어 삼키다 보면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월세가 저렴한 단칸방이니 이러한 불편쯤은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이웃집으로부터 흘러들어 오는 담배 냄새만은 아무래도 견디기 힘들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스미기 시작하면 좁은 방은 삽시간에 흡연실로 변한다. 이와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지 엘리베이터에 호소문이 붙었다. “19호 저층, 화장실에서 담배 좀 피우지 말아 주세요. 죽을 것 같아요. 부탁드립니다.” 화가 난 다른 입주민은 경고문을 붙였다. “13층, 몇 호인지 알지만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담배는 흡연실에서 피우시라고 얼마나 더 말씀드려야 할까요? 우리 집 개도 사람이 말하면 알아들어요. 이번에도 무시하면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또 다른 입주민은 협박문을 붙였다. “평일 낮에 방구석에서 담배 빠는 새끼들아. 나가서 일 좀 해라. 뒈지고 싶지 않으면.” 옳소! 주머니 속에 든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스러운 쪽지 하나가 새로 붙었다. “5호 중간층, 무슨 만두를 굽길래 냄새가 위층까지 올라오지요?” 모두가 냄새에 민감한 상태인 건 알겠다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하지만 나의 오해는 이어지는 문장을 읽고서 곧바로 풀리고야 말았다. “어떤 만두인지 이름을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저도 사 먹어야겠어요.” 큽,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그 밑으로 달린 댓글을 마저 읽었다. 다들 바쁘시겠지만 끼니는 거르지 말고 챙겨 드세요, 맨날 담배 얘기만 보느라 짜증 났었는데 오래간만에 박장대소했습니다, 어쨌든 모두의 건강을 위해 담배는 흡연실에서 피웁시다! 아니, 이왕이면 끊읍시다! 눈인사 한번 나누지 않은 새침데기들이 남긴 글치고는 몹시 다정다감했다. 나도 가방 안에서 펜을 꺼내 한마디 보탰다. 아니, 그래서 그 만두 이름이 도대체 뭐냐고요.
만두 냄새를 풍긴 주인공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맛있는 건 같이 좀 먹지 치사하게 혼자 먹고 있네. 냉동식품 코너 앞에 서서 이 만두 저 만두를 구경하며 마음속으로 투덜댔다. 장바구니에 배추, 파프리카, 청경채, 오이를 습관적으로 담았다. 그대로 계산대를 향해 가려다가 수퍼 안을 다시 한 바퀴 돌며 식용유와 프라이팬과 제일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만두를 차례차례 집어 들었다.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야채를 냉장고에 대충 부리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둘러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점화 손잡이를 돌릴 때 나는 따다다다다닥 소리가 박수갈채처럼 들려왔다. 군만두 냄새가 피어오르자 내 방은 금세 주방이 되었다. 이제 이 좁다란 공간은 서재도 됐다가 거실도 됐다가 침실도 됐다가 주방도 된다. 방이 아닌 집에 사는 기분이 비로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