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윙(The West Wing)'은 미국 NBC에서 1999~2006년 방영된 드라마로 애런 소킨이 제작했다.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 보좌관들의 사무실이 위치한 백악관의 웨스트 윙이 배경이다.

당신의 인생 드라마는 뭔가요? 이 질문에 대한 내 답은 성인이 된 이후 변함없다. 바로 미국 NBC방송이 만든 드라마 ‘웨스트윙’이다. 1999년 9월 22일 시작해서 2006년 5월 14일 7번째 시즌으로 막을 내렸다. 제목이 말해주듯 미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가상의 세계이지만 현실의 어젠다를 다루는 진지한 드라마이면서 백악관이라는 직장을 배경으로 치열하게 일하는 유능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드라마 속 바틀렛 대통령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학자이면서 뉴햄프셔 주지사를 거쳐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인물로 나온다. (참고로 드라마가 시작될 시점엔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었으나, 2001년 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다. 현실에서는 공화당 정부 시기였으나 드라마 세계에선 반대다.)

이 드라마는 대중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에미상에서 4년 연속 최우수 드라마 작품상을 수상했고, 극본을 쓴 에런 소킨의 이름을 미국 엔터테인먼트 역사에 또렷이 남기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빛나는 까닭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드라마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리더와 국가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으며, 입법·사법·행정 분야에서 일하는 캐릭터들이 젊은 세대의 롤모델로서 영감을 줬기 때문이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 다니던 시절, ‘웨스트윙’ 배우들이 학교에서 강연한 적이 있다. 드라마가 끝난 지 5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학교 중앙홀은 참석자들로 인산인해였다. 질의응답 시간에 어떤 학생이 마이크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어린 시절 봤던 ‘웨스트윙’ 덕분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공공 영역(Public Sector)에서 커리어를 선택했으며, 이 학교에도 오게 됐다고. 그 순간 국적을 불문하고 강연장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나눈 놀라운 유대감을 잊지 못한다. ‘너도 그랬어?’라는 마음이 전달되는 분위기란. 훌륭한 콘텐츠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생명력을 가진다.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웨스트윙’ 제작진과 배우들이 다시 손을 잡고 특별판 드라마를 만들었다. HBO 맥스에서 10월 15일 방영된 1시간짜리 작품. 시즌 3 중 한 편을 연극 무대 연출로 다시 찍었다. 이들이 20년 만에 다시 만나서 공연한 이유는 유권자들 투표를 독려하기 위한 것. 배경은 뉴햄프셔 작은 마을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로 평가되며,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하에, 누구를 지지하든 모든 표는 소중하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지난 7일 저녁, 46대 대통령 당선자로서 조 바이든이 승리 연설을 했다. 두 후보 간 뜨거운 경쟁은 120년 만에 최고 투표율이란 기록을 남겼다. 의미 깊게 봐야 할 것은, 다가올 미래의 주력인 MZ(밀레니얼 Z)세대는 누구에게 왜 투표를 했는지에 대한 스토리다. ‘웨스트윙’에 등장하는 유능한 가상의 인물들은 현실 누군가에게는 롤모델이 되고, 영감을 받아 성장한 이들이 현실에서 직접 미래를 만든다는 것을, 대학원에서 만난 전 세계 MZ세대를 관찰하며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로 촘촘히 연결된 글로벌 세계에서 MZ세대의 공통분모는 국적을 불문하고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런 정서를 먼저 파악하고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 한국의 MZ세대를 대변하고 미래를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