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휴대폰을 확인한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열고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라인 순회를 한 바퀴 마친 후, 메일함에서 뉴스레터를 확인하고 포털에서 뉴스를 읽고 나서야 물을 마시기 위해 일어난다. 하지만 이내 휴대폰을 찾는다. 화장실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집 앞에 분리 수거를 하러 갈 때에도 휴대폰은 친구가 된다. 15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 그 시간이 왜 그렇게 지루한지, 휴대폰을 꺼내지 않으면 금세 답답하다.

얼마 전 넷플릭스의 ‘소셜딜레마’라는 다큐에서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유튜브의 전·현직 종사자들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소셜미디어에 완전히 지배당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한 적이 있다. 섬뜩한 마음에 휴대폰 스크린 타임을 체크해 보니 무려 하루 평균 10시간, 그중 인스타그램을 하는 시간만 6시간이었다. 6분 같았는데 6시간이라니! 물론 다큐의 제목이 ‘안티 소셜’이 아니라 ‘소셜 딜레마’인 것처럼 실제 소셜에는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라는 2개의 추가 존재한다.

나에게 분명 소셜미디어는 글도 쓰고 사람도 만나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긍정적인 공간이지만 때로는 나의 멘털을 뒤흔드는 강력한 방해꾼이 된다. 바로 온라인의 ‘멋진 사람’들 때문이다. 왜 내 피드에는 그리 대단하고 멋진 사람들만 존재하는지. 2주 만에 10㎏을 뺀 사람부터 분명 책을 낸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두 번째 책을 쓰는 사람, 매일 저녁 꼬박꼬박 10㎞씩 달리는 사람, 전국의 멋진 카페들을 도장 깨듯 섭렵하는 사람까지. 회사를 다닐 때에도 지금과 비슷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나는 온종일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인스타그램 피드에 놀러다니는 사진들이 너무 많이 올라와서 앱을 지운 것이다.

‘저 사람들은 낮에 일을 안 하나?’ 아니면 ‘돈이 아주 많은가?’ 당연히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주말에 다녀온 곳을 평일에 올리거나 작년에 갔던 여행을 그리워하며 과거의 사진을 올릴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내 눈에 실시간으로 보였을 뿐.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티키틱의 ‘네 인생은 편집본, 내 삶은 원본’이라는 영상을 봤다. 제목에 끌려 클릭했는데 노래가 너무 좋아서 계속 듣다가 끝날 때쯤엔 뭔지 모를 위로를 받았다. 편집된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며 비교하고 있는 나에게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남들은 다 잘난 것 같고 뭐든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 느리고 그대로라고 느끼는 건, 내 인생은 편집되지 않은 원본이기 때문이 아닐까. 영상의 하단에는 이런 댓글이 달려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비하인드 신과 누군가의 하이라이트 신을 비교한다.’ 모든 역경을 딛고 자신의 한계를 끌어올려 성취에 발을 딛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고 동기 부여를 이끌어내지만, 그 역시 모두 편집되어 하이라이트만 담아낸 것이다.

애초 그들의 원본은 다 담기 어려울 만큼 지루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일 뿐이다.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는 또 부러워할 것이다. 아, 가끔은 누가 내 인생 좀 편집해줬으면 좋겠다 하면서. 3개월 만에 영어를 독파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을 멋지게 써내는 베스트셀러 작가도 됐다가 한 달 만에 다이어트는 물론 복근까지 만드는 여자로 편집되면 어떨까. 오, 상상만 해도 즐겁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절대 누군가가 편집해줄 수 없는 내 원본 인생에서는 정직한 시간만 흐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누군가에게 멋져 보이려 애쓰거나 무언가를 빠르게 이루려 조급해하지 말고 한 걸음씩 정진하는 것뿐. 원본 자체로 매력 있는 영상처럼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하루하루를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편해지는 더 빠른 방법은 편집된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줄여버리는 것이다. 나아가 내 인생은 편집 안 된 원본으로도 충분하다고 조금은 느긋하게 마음먹는 것이다. 그래, 일단 스크린 타임을 4시간으로 줄여야겠다.